윤석열의 남친샷·이재명의 데이트샷… '감성'만 넘치는 위험한 대선

입력
2021.08.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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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가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대규모 대면 유세나 지역 방문이 어려워지자, 여야 대선주자들은 온라인 선거운동 비율을 높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주무대가 된 이후 대선주자들은 감성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대권 경쟁의 핵심은 대선주자들의 정책, 도덕성과 리더십을 검증하는 것이지만, 요즘은 '짤'만 넘쳐난다. '어떤 대통령이 되려 하는지'를 진지하게 설명하는 시도는 별로 없다. 대선주자들이 '좋아요 정치'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제는 이미지가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의 '일부'일 뿐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SNS를 통해 선보이는 대선주자의 이미지는 전문가들이 투입돼 가공하고 보정한 것이라 더욱 위험하다.

윤석열·최재형, 비전 대신 이미지로 승부?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유권자 입장에선 가장 알려지지 않은, 그래서 알아봐야 할 게 많은 대선주자들이다. 윤 전 총장과 최 전 감사원장이 보수 진영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대선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콘텐츠와 비전을 공개하는 것보다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열심이다.

윤 전 총장은 주로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검사 윤석열'의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으려는 전략이다.

"노동자가 원하면 주 120시간 근무도 할 수 있어야 한다" "페미니즘은 건강한 페미니즘이어야 한다" 등의 발언으로 2030세대 표심 이탈이 우려되자, 윤 전 총장은 SNS 활동을 크게 늘렸다. 지난 2일 인스타그램에 민트초코맛 아이스크림을 먹는 '먹방' 영상을 올렸고, 6일엔 반려견과 침대에 누워있는 이른바 '남자친구 사진'을 공개했다. 반려견 '토리'와 '마리'의 전용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다.

윤 전 총장은 공개 행사에서 두 다리를 활짝 벌리고 앉는 이른바 '쩍벌' 자세로 입길에 올랐다. '타인을 배려하거나 의식하지 않는 태도'라는 게 비판의 논지였지만, 그는 반려견을 대동해 논란을 잠재우려 했다. '마리'가 뒷다리를 180도로 벌리고 바닥에 엎드린 사진을 공개하며 "아빠(윤 전 총장)랑 마리랑 같이 매일 나아지는 모습 기대해달라"고 적었다.

최 전 원장은 지난 4일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각종 정책 현안 관련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해 '준비 안 된 대선주자'라는 비판을 샀다. 이후에도 주로 이미지 메이킹에 힘을 쏟고 있다.

최 전 원장 역시 SNS에서 '친근하고 자상한 보통 중년'의 모습을 부각한다. 아들과 함께 파마를 하거나 손자와 놀아주는 모습을 담은 사진, 지인과 탁구를 치는 영상 등을 올렸다.

'애국' 역시 최 전 원장이 강조하는 이미지다. 선친부터 손자까지, 4대가 명절에 모여 국민의례를 하는 사진은 최 전 원장 대선캠프가 언론에 공개한 것이다.


이재명·이낙연 '애처가' 경쟁중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감성 정치'가 한창이다.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정책 경쟁 대신 가족적ㆍ인간적인 면모를 앞다투어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남성 대선주자들은 서로 "내가 배우자를 더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애처가 경쟁'을 하는 중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7일 페이스북에 "김혜경의 남편, 이재명입니다"라는 글과 함께 배우자 김씨와 손을 잡고 걷는 사진을 올렸다. 이 지사는 배우자에 대해 "저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결이 고운 사람이다. 김혜경 없이는 국민 삶을 바꾸겠다는 큰 도전에 나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인스타그램에 배우자 김숙희씨의 '숙희씨의 일기장'이 연재되고 있다. 이 전 대표 부부의 첫 만남을 비롯한 각종 일화를 소개하는 그림 일기다. 일기에서 김씨는 "목소리가 참 좋았지" "모르는 게 없어 보인다" 등의 글로 이 전 대표를 칭찬한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도 최근 인스타그램에 부인 최혜경씨와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처음 만났을 때의 혜경씨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고 했다.

영부인 후보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대선주자의 배우자 동원은 여성 표심을 노린 이미지 메이킹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기투표 아닌데… 'SNS 포퓰리즘' 확산 경계해야

대선이 '감성 정치'로 흐르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일단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 선거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콘텐츠보다는 '어떻게 보이는지'에 치중하는 측면이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대선주자의 부족한 자질을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채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며 "여야 모두 SNS에서 좋아요를 늘리는 '호감도' 경쟁에만 매몰돼 있다"고 봤다.

정치신인들이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르면서 '정책 경쟁'이 후순위로 밀린 측면도 있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부 대선주자들 입장에선 제대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시간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포스트 코로나 대처와 부동산 문제 등 중요한 이슈는 뒷전이 됐다"고 말했다.

여권은 '무조건 정권사수', 야권은 '무조건 정권교체'라는 구호만 내세우느라 서로의 공약과 비전에 관심이 적은 것도 한 이유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여야 모두 정치의 극단적 대립을 풀 수 있는 대선을 만들려면 진지한 메시지를 고민해야 하는데, 고민의 깊이가 얕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박준석 기자
박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