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6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 종합순위 16위. 이는 8일 도쿄올림픽 주경기장에서 막을 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이 받아 든 성적표다. 개막 전 설정한 금메달 7개와 종합 10위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이른바 ‘금메달 효자’ 종목으로 기대됐던 유도, 태권도, 사격, 레슬링, 여자골프 중 한 종목에서라도 금을 캤다면 일단 메달 목표는 이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을 결과만 두고 한국 선수단이 ‘실패했다’고 보는 시선은 드물다. ‘명품 궁사’로 거듭난 김제덕(17)의 우렁찬 “파이팅”으로 시작해 ‘배구 여제’ 김연경(33)의 아름다운 퇴장으로 마무리된 이번 대회는 공정한 선발과 승복의 가치, ‘원 팀’의 힘을 새삼 일깨운 올림픽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수영, 육상, 근대5종 등 이른바 기초 종목에서의 새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학과 교수는 “이번 대회는 ’운동을 잘한다’는 기준이 새로 정립됐고, 이를 국민 모두가 학습하게 된 계기였다”고 했다. 어른들은 과거처럼 젊은 세대에게 성적이나 메달이란 짐을 얹어 주지 않고, 선수들도 과하거나 부당한 기대나 책임감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맞춰 최선을 다한 데서 만족을 찾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 이번 도쿄올림픽은 결과에서 오는 쾌감보다 젊은 선수들의 당찬 도전 과정이 국민들에게 청량감을 안겼다. 박태환(32) 이후 ‘한국은 안 된다’고 여겨졌던 남자 수영엔 황선우(18)가 등장했다. 그는 200m 자유형에서 150m까지 1위를 달리다 5위로 마무리했음에도 메달에 대한 아쉬움보다 150m까지의 기록에 놀라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군인 신분으로 높이뛰기에 출전한 우상혁(25)은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한국신기록인 2m35를 넘어 4위를 차지했다. 비록 메달을 놓쳐 ‘즉시 전역’은 놓쳤지만, 밝은 표정으로 모든 순간을 즐기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줬다. 남자 근대5종에서 4위를 기록해 눈물을 보인 정진화(32)는 동메달을 목에 건 전웅태(26)를 두고 “다른 선수 등이 아닌, 웅태 등을 보면서 결승선을 통과해서 마음이 좀 편했다”며 가슴 뭉클한 동료애를 남겼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변화를 젊은 선수들이 새삼 일깨워 주면서 감동을 더하기도 했다. 4강에 올라 대회 최종일까지 승부를 펼친 여자배구 대표팀은 과거 학폭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코트를 떠난 이재영-이다영(25) 자매에 그릇된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선수들은 이들의 전력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외출과 외박을 반납하고 4개월간의 맹훈련으로 호흡을 맞춰 ‘원 팀’으로 거듭났다. 또 ‘선수 출신도 아닌’ 키 작은 외국인 감독 스테파노 라바리니(42·이탈리아)를 신뢰하며, 객관적인 수치를 바탕으로 한 ‘데이터 배구’를 체득해 우리보다 강한 상대들을 꺾어가며 4강까지 올랐다.
‘노골드’에 재미까지 없어졌다며 비판을 받기도 한 한국 태권도에선 결승전서 패하고도 승자를 향해 활짝 웃으며 엄지를 치켜든 이다빈(25)이 승복에 인색한 우리 사회에 묵직한 교훈을 던져줬다. 일본 유도 심장 무도관(武道館)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를 걸겠단 꿈이 눈앞에서 좌절됐음에도 자신을 쓰러뜨린 일본 선수의 손을 치켜들어 준 조구함(29)을 향해 현장에 있던 전 세계 관계자들이 기립박수를 전한 이유도 같다.
안산(20)이 세운 단일 대회 양궁 3관왕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은 대회 기간 중 자신을 둘러싼 페미니스트 이슈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완성한 성과라 의미가 더 컸고, 양궁 남자 단체전 금메달은 40세 오진혁과 17세 김제덕의 세대 차를 허물고 이뤄낸 결실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의 성과를 더 빛나게 만든 한국 양궁의 공정한 선발 시스템은 세계적 자랑거리가 됐다.
다만 국민들은 무기력하게 무너진 ‘인기 구기종목’엔 따가운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남자 야구와 축구, 여자 골프가 대표적이다. 특히 야구와 축구는 메달을 따지 못해서라기보다,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자세와 감독의 전략, 기량 발전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점들을 꼬집었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는 “도쿄올림픽은 전반적으로 한국의 사회문화적 성장을 보여준 올림픽이었던 것 같다”며 “메달 경쟁 부분 외에도 황선우·우상혁 등 (노메달리스트의)스토리에도 관심을 가지는 문화가 많이 정착됐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상대를 과하게 깎아내리면서 한국을 과대평가했던 문화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한류와 경제 성장을 통해 과거처럼 세계에서 주눅들지 않는 MZ세대의 자신감을 보여준 무대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