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실시되는 하반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두고 정부 당국과 정치권이 갈피를 못 잡고 있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이 남북관계를 감안한 연기를 주장한 뒤로 여당에선 연기론과 불가론이 부딪혀 내분이 벌어졌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모호한 입장만 유지하고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정치권의 안보 논란을 방치하는 것은 극히 무책임하다.
범여권 의원 70여 명이 5일 훈련 연기를 촉구하는 연판장을 공개하면서 당내 파열음은 최고조에 달했다. 연판장을 주도한 설훈 민주당 의원은 “(남북 통신선 재개통의)중요한 시기를 맞은 이 상황을 남북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훈련 중단과 연기를 주장했다. 하지만 송영길 대표는 “한미 간 합의된 훈련은 불가피하다”며 연기론을 일축했다. 정부 여당 내에서 연합훈련 실시를 두고 충돌이 벌어지자 훈련 주무부처인 국방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처한 입장이 됐다.
청와대의 모호한 입장이 정부 여당의 혼란을 부추긴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주요지휘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여러 가지를 고려해 (미국 측과) 신중하게 협의하라”는 간단한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안보 최고책임자로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마치 국방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인상만 남겼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 이어 훈련 연기를 주문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북한에 굴복한다는 불필요한 오해까지 불렀다.
한미 연합훈련이 모처럼 되살아난 남북대화 무드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훈련에 참가할 미국 증원군이 속속 입국해 10일부터 사전훈련에 들어가는 일정에 비춰보면 훈련 연기는 사실상 어려운 선택지가 돼 버렸다. 그렇다면 규모와 시기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의 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는 게 남북관계와 한미동맹을 동시에 관리하는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