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서 ‘숨은그림찾기’

입력
2021.08.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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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란 주로 왼손을 쓰는 사람, 또는 오른손보다 왼손을 더 잘 쓰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실제로 왼손잡이인 학생들이 내린 정의는 ‘왼쪽 구석 자리에서 밥 먹는 사람’ 또는 ‘반대편으로 기운 자세 때문에 시험 중에 의심받는 사람’이다. 밥 먹을 때 벗의 오른팔과 안 부딪히려고 왼쪽 구석에 자리를 잡는 그 심정을 당사자가 아니면 누가 알겠는가?

말은 소통을 선명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빛에는 반드시 그늘도 따라다니는 바, 말에는 사전적 의미뿐만 아니라 배경이 담긴 말뜻이 늘 더 있다. ‘미망인’을 예로 들어보자. 이 말의 뜻은 단순히 ‘남편을 여읜 여자’로 그치지 않는다. 고대 순장제도에서 비롯된 말로, 원래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큰 실례를 범하는 일이다.

한때 ‘48㎏의 압박’이라는 말이 있었다. 유명한 여자 연예인들이 프로필에 몸무게를 하나같이 48㎏이라고 소개하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키와 상관없이 같은 몸무게가 나올 수는 없다. 같은 맥락에서, ‘인형 같아요’란 말이 과연 칭찬일지 돌아본다. 인형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의 형상을 한 장난감으로, ‘예쁘고 귀여운 아이’에 대한 비유 표현이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그 말에는 보통 사람의 자연스러운 얼굴이라기보다는 큰 눈에 오뚝한 코, 하얀 살갗 등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걸려 있다. 사람은 다 다르게 생겼는데 아름다움의 틀에다가 사람을 맞추는 것이 칭찬이 될 수 있을까?

원래 그늘이란 빛의 강도만큼 있을진대, 최근에는 말에다가 그늘을 키우는 공식이 생긴 듯하다. 얼마 전 ‘경로석에 앉기 싫어하는 우리 엄마’라는 기사를 읽었다. 경로석이란 노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마련한 좌석이지만, 경로석에 앉는 이에 대한 왜곡된 시선이 따가워서 그 자리에 선뜻 앉지 못한다는 어르신의 고백이었다. 배가 덜 부른 초기 임부들이 임산부석에 앉지 못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말에 부정적 시선이 내리쬐어 불필요한 그늘이 더 넓어진 것이다. 삶에서 부정적 습관을 만드는 일등 공신은 ‘방관과 동조’이며, 그 반대편에 서서 “아니 되옵니다!” 하고 외치는 충신은 ‘성찰’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의도하든 아니든 자신이 쓰는 말이 누군가를 압박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더불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오늘부터 말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해 보자.

이미향 영남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