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에 목이 탈 때 들이키는 청량한 물 한 모금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편의점 진열대에선 제주 화산 암반수와 백두산 원시림 용천수, 알프스 빙하수 등 국경과 바닷길을 건너온 각종 생수가 저마다 ‘청정수’를 자부하며 고객을 유혹한다. 그러나 목마름이 가신 뒤 빈 페트병을 마주할 때마다 문득 찜찜한 기분이 밀려든다. 과연 ‘생수=청정’이라고 봐도 되는 걸까.
생수를 마시며 느끼는 죄책감의 ‘근원’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글로벌보건연구소(ISGlobal)가 바르셀로나시를 표본 삼아 물 소비가 환경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다. 5일(현지시간) 이 논문을 소개한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실제로 생수가 환경을 크게 오염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르셀로나시 인구는 135만 명으로, 이중 약 58%가 평상시 생수를 마신다. 연구진은 시민 전체가 음용수로 생수를 이용한다고 가정할 때, 생수 생산 비용이 연간 8,390만 달러(약 960억 원)가 더 늘어나고 생수 추출과 가공 과정에서 해마다 생물 1.43종이 멸종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시민 모두가 수돗물을 음용할 때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두드러진다.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생수가 수돗물보다 무려 1,400배나 더 컸고, 자원 추출 비용은 3,500배로 증가했다. 생수 소비가 늘수록 환경엔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수돗물보다 생수를 생산하는 과정에 더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투입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미국에선 생수 페트병을 만드는 데 매년 석유 1,700만 배럴이 쓰이고, 영국에서 생수는 수돗물보다 500배 비싸다.
그렇다고 수돗물을 마시자니, 이 또한 꺼림직하다는 게 대중의 인식이다. 그래서 연구진은 수돗물에 대한 건강 영향 평가도 함께 시행했다. 대개 수돗물에는 소독제 및 소독 부산 물질인 트라이할로메티인이 극미량 녹아 있는데, 이 물질은 방광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영향은 매우 미미했다. 바르셀로나 시민 모두가 수돗물을 음용했을 때 1인당 기대수명이 평균 2시간 정도 줄어드는 데 불과했다. 시민 153만 명을 다 합치면 약 309년이지만, 이마저도 수돗물을 정화해 마시면 36년으로 크게 감소한다. 그냥 수돗물을 마셔도 안전하다는 뜻이다.
연구를 진행한 ISGlobal의 환경역학자 크리스티나 비야누에바는 “이번 연구는 환경과 건강 등 모든 면에서 수돗물이 생수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는 걸 가리킨다”며 “생수 소비를 줄이려면 더욱 적극적인 정책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는 원재료 생산부터 제품 출하까지 발생하는 모든 환경 영향을 평가하는 전과정평가(LCA) 및 건강 영향 평가(HIA)를 기반으로 수행됐다. 분석 자료로는 바르셀로나시 공중보건국이 제공한 시민들의 물 소비 패턴과 수돗물 내 화학물질 함유량 등이 쓰였다. 논문은 최근 국제학술지 종합환경과학회지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