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MBTI가 뭘 것 같아요?" "ENFP, 스파크형(정열적이고 활기가 넘침) 아닌가요?"
20대 직장인 김영아(가명)씨가 최근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와 화제로 삼은 건 성격 유형 검사인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였다. 자신의 MBTI 결과가 무엇일 것 같은지 묻고, 실제로는 어떤 유형인지 설명하면서 한참 대화했다. 두 사람 모두 MBTI로 도출되는 성격 유형별 특성을 알고 있고, 이런 지식이 처음 만난 상대의 성향을 가늠하는 데 보탬이 되리라는 공감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씨는 "몇 해 전만 해도 소개팅 상대에게 좋아하는 음식이나 영화, 혈액형을 먼저 물었다면 이젠 MBTI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MBTI는 검사받는 사람이 상반되는 두 성향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에 따라 성격유형을 판별한다. △외향형(E)-내향형(I) △감각형(S)-직관형(N) △사고형(T)-감정형(F) △판단형(J)-인식형(P)으로 구성된 4쌍의 지표 중 선호하는 쪽을 조합하면 총 16종류의 성격 유형이 나온다. 만일 외향형+감각형+사고형+판단형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ESTJ 유형이 되는 식이다.
20, 30대 젊은층을 통칭하는 MZ세대에게 MBTI는 하나의 문화다. 정보기술(IT) 기업을 다니는 박모(31)씨는 "요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름, 나이 다음에 MBTI를 공개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직장인 A(26)씨는 "MBTI에 대해 대화할 수 없는 사람과는 세대 차이를 확실히 느끼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성격 유형이 같다는 이유로 쉽게 유대감을 갖기도 한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특정 성격 유형만 모인 익명 대화방이 있는가 하면, 자신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노래를 묶은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한다.
한국에 MBTI가 알려진 지는 30년이 넘었지만, 각광받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전문가들은 자신은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는 욕구가 커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재영 한국MBTI연구소 연구부장은 "(현 세대에게 MBTI는) 자신과 타인이 왜 같거나 다른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혈액형 등 다른 지표보다 신빙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활성화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을 통해 간이 MBTI 테스트를 비용 없이 쉽게 받을 수 있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기업이나 단체는 MBTI 열풍에 착안해 직접 검사지를 만들기도 한다.
MBTI를 맹신할 경우 사람을 성급히 재단하게 된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그러나 MBTI가 개개인마다 지닌 특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퍼뜨리는 순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모(26)씨는 "기성사회에선 외향적이거나 계획성이 뛰어난 사람 등 바람직한 인간상이 있었다면, MBTI가 보편화되면서 내향적이거나 즉흥적인 면모도 부정되지 않고 이해받을 수 있게 됐다"면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라는 명제를 사회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