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연합군사훈련(한미훈련) 실시 여부를 두고 정부ㆍ여당이 내홍에 휩싸였다. 지도부의 거듭된 “훈련 불가피” 입장에도 여당 의석수 3분의 1을 훌쩍 넘는 범여권 의원들이 5일 공개적으로 훈련 연기를 촉구한 것이다.
문제는 한미훈련 개시일(16일)을 열흘 앞둔 시점에서 연기가 가능하느냐는 점이다. 일단 “병력 동원이 없는 ‘가상 훈련’인 만큼 물리적 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고 군은 설명한다. 이럴 경우 미국과의 신뢰 약화란 더 큰 외교적 부담을 감당해야 해 청와대와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의원 74명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결정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한 적극적ㆍ능동적 조치로서 한미훈련 연기를 결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훈련 연기는) 북한이 한반도 평화 협상에 나올 것을 조건으로 한 조치”라며 “저들(북한)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것도, 위협에 굴복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한미훈련을 미루는 대가로 북한에 남북 당국 간 대화 재개를 요청했다고 볼 수 있다.
16~26일 치러질 것으로 알려진 연합지휘소훈련(21-2 CCPT)은 과거 을지프리덤가디언(UFG)연습의 후신 격이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전투 병력 기동 없이 일정한 훈련 시나리오를 컴퓨터로 치르는 가상 훈련인 점은 똑같다. 군 당국 관계자는 “시뮬레이션 요원들이 시나리오를 맞춰보는 형태여서 정치적 결심만 서면 훈련 연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상반기 실시되는 대표적 한미훈련인 독수리(FE)훈련은 병력 30만 명(2017년)이 동원돼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면 군사력이 엄청나게 소모될 수밖에 없다. 지휘소 훈련은 절차만 보면 이런 비용 부담에서 자유롭다는 얘기다.
훈련 동반자인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부 당국자는 “훈련은 한미 간 일종의 약속인데, 현재로선 약속을 깰 명분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이날 “훈련이 준비된 상황에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를 이유로 연기하는 건 맞지 않다”며 결정을 번복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남북 통신선 연결 정도로 훈련을 미룰 까닭이 없다”고도 했다. 일정에 변화를 줘야 할 만큼 남북ㆍ북미 협상이 진전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미군 측의 훈련 시행 의지도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소식통은 “지난달 취임한 폴 라카메라 한미연합사령관으로선 이번이 첫 한미훈련이라 양국의 작전 이해를 향상시킬 적기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로 오랫동안 실기동 훈련을 하지 못해 시뮬레이션 훈련 필요성이 더 커진 측면도 있다.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던 지난해 3월 상반기부터 그해 8월 하반기, 올해 3월 상반기까지 한미훈련은 죄다 실기동 없이 축소 실시됐다. 군 관계자는 “이번 훈련 규모는 지난해 하반기 수준이거나 그보다 더 쪼그라들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