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디테일이 없다

입력
2021.08.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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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하나가 상용화 어려운 기술 수준" 지적

대한민국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 100대 중 80대는 전기차고 17대는 수소차다. 가솔린·디젤 같은 내연차는 겨우 3대로 ‘희귀템'이 됐다. 자동차 배터리를 충전할 전기의 70%는 태양열,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기차는 100% 전기‧수소로 운행되고, 바다 위 배는 바이오연료를 쓴다. 그래도 발생하는 생활 속 탄소는 한데 모아 땅에 묻거나, 그마저도 다시 쓴다.

SF영화 같은 이야기 아니냐고 하겠지만, 대통령 직속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그려낸 2050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탄소중립위는 5일 이 같은 내용의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3개 시나리오 초안'을 공개했다.

탄소중립위가 제시한 3가지 시나리오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발전 방식이다. 1안은 화력발전소를 최소 7기만 유지하는 등 그래도 기존 체계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안이고, 2안은 화력발전을 중지하고 LNG(천연가스) 발전은 예비로 가동한다. 3안은 화력·LNG 발전을 모두 중단하고 신재생발전으로 완전히 전환한다. 여기에 수송, 산업, 건물 등의 분야에서 감축 작업을 통해, 탄소 배출량이 정점에 달했던 2018년(2억6,960만 톤) 기준 각각 96.3%(1안), 97.3%(2안), 100%(3안)를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위는 이 세 가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국민 의견을 수렴, 10월 말 정부 최종안을 확정한다. 윤순진 탄소중립위 민간공동위원장은 "이번 시나리오는 부문별 세부정책 방향과 전환 속도를 가늠할 나침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장기적으로 적용될 대략적인 시나리오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분야별 목표치만 툭툭 던져둔,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누가 책임지고 추진할 것이며, 대대적 전환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나 고통은 누가 어떻게 부담할 것이냐 같은 아주 구체적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시나리오별 실행에 필요한 기술의 적정한 수준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는 대략이라도 제시했어야 했다는 비판이다.

대표적인 지적이 이산화탄소를 모아서 저장해두거나 다시 재활용하겠다는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이다. 시나리오 1안은 CCUS 기술을 이용해 무려 9,5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2안은 85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줄이겠다고 밝혀뒀다. 이성호 에너지기술평가원 수석연구위원은 “CCUS 기술로 이산화탄소를 대폭 줄이겠다는 곳은 주로 석유회사들"이라며 “이제까지 그 기술이 특별히 발전되지 않았을뿐더러, 앞으로도 화석연료 사용을 상쇄할 만큼 발전하진 못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고 지적했다. 김주진 기후솔루션 대표는 “설상 CCUS 기술이 실현된다 해도 그 많은 이산화탄소를 모아다 묻어서 저장할 땅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탄소중립위에 참여한 전문가 사이에서도 "시나리오별로 가정한 기술 하나하나를 따져보면 2050년까지 그 기술들이 적정한 비용으로 상용화 가능할지 의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50탄소중립이 진짜 탄소중립이긴 하냐는 환경단체들의 비판과는 별개로, 시나리오 자체가 비현실적인 이벤트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 셈이다.

이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