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원의 기적'… 2만 배로 불어나 116명이 행복해진 사연

입력
2021.08.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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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식당의 작은 선행이 
고아와 빈자 100여 명에게 전파 
가장 잘 베푸는 나라의 진면목

초로의 남성이 구겨진 지폐를 들고 식당을 서성인다. '이 돈으로 밥을 살 수 있을까' 죄스러워하는 표정이다. 밥과 요리를 봉지에 담아준 주인은 남성이 건넨 돈을 받지 않는다.

인도네시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른 53초짜리 동영상은 2,400만 명이 봤다. 식당 주인의 작은 선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총 116명에게 기쁨을 안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모두가 힘든 요즘 인도네시아의 진면목을 보여준 사연은 이렇다.

지난달 29일 서부자바주(州) 가루트에서 젤리를 파는 망 에만(51)씨는 나시파당(Nasi Padang) 식당에 들렀다. 나시파당은 별미로 유명한 서부수마트라주 파당 음식으로 밥(nasi)에 생선, 닭, 소고기 등을 골라 얹는 요리다. 에만씨는 2017년 CNN방송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선정한 른당(일종의 소고기 장조림)을 골랐다.

가격이 1만8,000루피아(약 1,400원)였는데 정작 그의 수중엔 5,000루피아(약 400원)밖에 없었다. 식당 주인은 안쓰러운 마음에 그에게 공짜로 음식을 줬다. 에만씨가 배부를 수 있게 밥은 원래 양보다 더 퍼 줬다.

식당 주인의 딸 엘사 아멜리아(19)씨는 이 장면을 SNS에 올렸다. 많은 네티즌이 에만씨를 돕겠다고 나서자 엘사씨는 기부 창구를 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동영상을 올렸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돕고 싶어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했죠." 하루 만에 무려 1억800만 루피아(약 860만 원)가 모였다.

올해 자카르타 최저임금(월 441만 루피아)을 감안하면 공장 노동자 2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큰 돈이다. 엘사씨는 그 돈을 모두 에만씨에게 전달했다. 에만씨는 식당 주인 가족에게 큰절을 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에만씨는 자신에게 찾아온 복을 아낌없이 나눴다. 3일 마을에 살고 있는 요보호아동(고아) 60명과 가난한 이웃 54명에게 엘사씨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골고루 선물한 것이다. 현재 임신 중인 에만씨의 아내는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딸 이름을 아멜리아 엘사라고 짓겠다"고 말했다.

행복은 기부에 앞장선 엘사씨에게도 찾아왔다. 엘사씨가 다니는 가루트대는 4일 "코로나19라는 심각한 상황에서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영감을 주고 선한 영향력을 미친 엘사 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가루트대 총장은 "개인적인 선행뿐 아니라 어려움에 빠진 이웃에게 해결책까지 제시한 엘사 학생은 학교의 자랑이자 고마운 존재"라고 추켜세웠다.

400원이 2만1,500배 불어나 860만 원이 되고, 두 사람의 아름다운 인연이 114명에게 전파되는 과정을 지켜본 인도네시아인들은 코로나19로 팍팍해진 현실을 잠시 잊고 희망을 읊조렸다. 그들이 함께 나눈 물질은 곧 사라지겠지만 그 기억만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영국 자선지원재단이 발표한 '세계기부지수'에서 2018년에 이어 올해도 가장 잘 베푸는 나라로 선정됐다. 최소 80원부터 가능한 기부에 조건 없이 나선다. 사람이 힘이다.

자카르타= 고찬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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