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 의무화’에 둘로 쪼개진 美… 정치가 보건을 뒤덮었다

입력
2021.08.06 04:30
CNBC "의무 접종, 찬성 49% vs 반대 46%"
미접종자·공화당 지지자, 백신 거부감 강해
공화당州, 델타 변이 코로나19 확산세 뚜렷
바이든 "옳은 일, 최소한 방해 말라" 작심비판
기업들 백신 정책도 강경책·회유책 엇갈려

‘사회 안전’을 위해서라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강제로라도 맞혀야 하나, 개인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야 할 문제인가. ‘백신 접종 의무화’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면서 미국 사회가 찬반에 따라 둘로 쪼개지고 있다. 미 국민 절반은 백신 접종을 의무화해야 할 만큼 최근 델타 변이 확산세가 심각하다고 보는 반면, 나머지 절반은 백신이 바이러스보다 위험하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다.

정치권도 극과 극으로 갈라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백신 접종에 미온적인 공화당 주(州)정부를 향해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라”며 공격했고, 해당 주정부들은 “방역이 경제 회복을 가로막는다”며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은 나날이 악화하며 통제불능 상태로 치닫는 모습이다.

“최근 코로나19는 공화당·미접종자들의 유행병”

미 경제매체 CNBC방송이 4일(현지시간)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백신 접종 의무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49%, ‘아니다’라는 답변은 46%로 각각 나타났다. 둘의 차이(3%포인트)는 오차 범위(±3.5%포인트) 이내다. 사실상 찬반 양론이 똑같은 비율로 팽팽히 맞선 셈이다. 특히 접종자 63%가 백신 접종 의무화를 지지한 반면, 미접종자는 79%가 반대했다. 접종 의무화 조치를 취한다 해도, 쉽사리 접종률이 오르진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징후다.

정치 성향에 따라서도 크게 엇갈렸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찬성 74%, 반대 21%였지만, 공화당 지지자들은 찬성 29%, 반대 68%로 정반대 양상을 보였다. CNBC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고령층이 백신 의무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했고, 최대 반대 세력은 공화당을 선호하는 젊은층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정치 양극화와 세대 분열이 ‘백신 양극화’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바꿔 말하면 ‘정치’가 ‘보건’ 사안마저 집어삼켰다고도 볼 수 있다. 이번 여론조사는 미 국민 802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4~28일 실시됐다.

실제로 미접종자들의 백신 거부감은 상당히 컸다. 지난달 15~27일 이뤄진 카이저가족재단 여론조사 결과, 미접종자 절반 이상인 53%가 “백신을 맞는 게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접종자의 압도적 다수인 88%가 그 반대 답변을 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 미접종자 57%는 “코로나19 위험성이 언론에 의해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델타 변이 통제를 위해 공공장소 마스크 착용과 대규모 모임 규제 등이 필요하다”는 응답 비율은 37%에 그쳤다. 델타 변이 때문에 백신을 맞기로 마음을 바꾼 사람도 5명 중 1명에 불과해 백신에 대한 인식의 고착화 경향이 뚜렷했다. 미 보건당국이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세를 두고 “백신 미접종자들의 유행병”이라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다.


정치 공방 가열… 기업들 백신 정책도 양갈래

그만큼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달 31일까지 2주간 확진자 가운데 델타 변이 감염 비율은 무려 93.4%에 달했다. 확실한 지배종이 됐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6월 중순만 해도 1만 명을 밑돌았던 일일 신규 감염자는 8만~10만 명 수준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여전히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은 무려 9,300만 명에 이른다.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은 이날 언론그룹 매클래치와의 인터뷰에서 “몇 주 안에 하루 확진자 수가 20만 명이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참았던 한마디를 쏟아냈다. 낮은 백신 접종률 탓에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는 남부 지역 공화당 주정부들을 향해 “옳은 일을 하도록 도와 달라. 돕지 않을 거라면 최소한 방해라도 하진 말라”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이어 “당신의 힘을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하라”는 호소도 했다. 전파력이 강한 델타 변이를 통제하지 못하면 그간의 방역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절박함의 표현이다.

특히 마스크 착용 의무화 금지로 맞선 텍사스주와 플로리다주엔 “나쁜 보건 정책”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취임 초만 해도 공화당 주정부 비판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까 우려해 불필요한 정치적 공방을 피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를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센 발언’이다. CNN방송은 “바이든 대통령이 바이러스 통제에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보여 준 대목”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주정부가 순순히 말을 들을 것 같진 않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당신의 일이나 하라”며 즉각 반발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자처한 디샌티스 주지사는 “바이든 대통령이 사람들을 통제해 직업과 생계를 망치려 한다면 나는 그를 가로막을 것”이라며 “플로리다 주민을 위해 서 있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현재 플로리주는 병상 84%, 중환자실 86.5%가 꽉 들어차 공중 보건 시스템이 한계에 다다랐다. 공화당 주정부가 공중 보건보다 정치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방역 책임이 기본적으론 주정부에 있는 터라, 연방정부가 백신 접종 의무화를 전국에 확대 적용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다. 그렇다 보니 각 기업들의 백신 정책도 강경책과 회유책으로 엇갈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페이스북 등 빅테크 기업들과 육가공업체 타이슨푸드는 “회사에 출근하려면 백신부터 맞으라”는 지침을 내렸으나, ‘백신 기피 현상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직원들 이탈을 막으려 강제적 조치보단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곳도 적지 않다.

미국 내 고용 인원이 160만 명에 달하는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의 경우, 양면 전술도 쓰고 있다. 본사 직원들엔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한편, 매장·창고 직원들에겐 150달러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철강회사 클리블랜드클리프는 직원 접종률을 조건으로 “75%를 넘으면 1,500달러를, 85%를 돌파하면 3,000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김표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