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열렬하게 사랑해도 상대방은 내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손에 잡히지도, 끝내 가까워지지도 않는다. 일방적인 짝사랑이라고 동정하기엔 나의 사랑 없이는 상대방의 존재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연애 관계보다도 어쩌면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사랑의 형태인지도 모른다. 아이돌, 그리고 팬이다.
일본 작가 우사미 린의 장편소설 ‘최애, 타오르다’는 이러한 아이돌과 팬 사이의 미묘한 역학 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이다. 동시에 무언가를 애착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세대의 좌절과 열망을 섬세하게 그린다.
우사미 린은 1999년생으로 2019년 데뷔, 이듬해 미시마 유키오상을 사상 최연소로 수상한 일본의 떠오르는 젊은 작가다. 지난해 여름 발표한 이 소설 ‘최애, 타오르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올해 1월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했다. 올 상반기 일본 서점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기도 하다.
원제는 ‘오시, 모유(推し, 燃ゆ)’로, ‘오시’는 ‘밀다, 추천하다’라는 뜻의 동사 '오스(推す)'의 명사형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 중 가장 지지하는 멤버를 일컫는 ‘밀고 있는 멤버’(推しのメンバー·오시노 멤버)를 줄여 부른 데서 출발한 단어다. 우리말로는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뜻하는 ‘최애(最愛)’와 뜻이 비슷해 국내 제목은 ‘최애, 타오르다’가 됐다.
주인공 아카리는 “다들 어렵지 않게 해내는 평범한 생활도 내게는 쉽지 않은” 십대 여학생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짐짝 같은 취급을 받는 탓에 자신의 존재가 성가시다고 느낀다. 그런 아카리가 유일하게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아이돌 그룹의 멤버 마사키다. 열여섯 살에 마사키가 출연한 연극의 DVD 를 본 순간부터 마사키는 아카리의 ‘최애’가 됐고, 이후 아카리의 모든 삶은 마사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 역시 한 시간 일하면 최애의 사진을 한 장 살 수 있고, 두 시간 일하면 CD를 한 장 살 수 있고, 1만 엔을 벌면 티켓 한 장이 되기 때문이다. “현실에 있는 남자를 봐야지”라는 주변의 충고는 “최애의 존재를 사랑하는 것 자체로 행복”한 이 사랑의 양태를 몰라서 하는 말이다. 이 사랑에서 ‘대상’보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온 힘을 쏟아 빠져들 대상이 내게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소설은 어느 날 최애가 온라인상에서 팬을 때렸다는 논란에 휩싸이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최애와 관련된 자료를 모두 기록하고 해석하는 것을 사랑의 방식으로 삼았던 아카리에게, 최애가 왜 팬을 때렸는지 알 수 없다는 ‘해석의 공백’은 이 사랑을 조금씩 침식한다. 이후 그룹 해체와 연예계 은퇴라는 최애의 행보는 ‘오로지 살아야 할 유일한 이유’였던 사랑이 소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학은 무엇보다 진짜 '팬'이 아니고서야 쓸 수 없을 에피소드와 생생한 묘사에 있다. “최애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나를 불러 일깨운다. 포기하고 놓아버린 무언가, 평소에는 생활을 위해 내버려둔 무언가, 눌려 찌부러진 무언가를 최애가 끄집어낸다(...)그 존재를 생생하게 느낌으로써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고 했다”는 소설 속 문장은 꼭 아이돌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다.
지나친 핍진함 탓일까, 일본 현지에서는 “현실을 깊이 고찰해낸 수작”이라는 열광과 “SNS에 올린 글을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공존했다. 어느 쪽이든, 이 소설이 지금 우리 시대의 가장 생생한 정념을 담아낸 작품임을 증명하는 반응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