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빈치 그림만 믿지 말라... '석기 그릇'에 담긴 최후의 만찬 

입력
2021.08.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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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그때에 열두 제자의 하나인 가리옷 사람 유다가 대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당신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면 그 값으로 얼마를 주겠소?" 하자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공동번역 성서 마태오 복음 26장 14~16절

종교는 없어도 그림은 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1490년대)’ 말이다. 오늘도 수많은 벽에 모사품으로 걸리는 덕분에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최후의 만찬이 무엇인지는 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가리옷 사람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겼음을, 베드로가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자신을 모른다고 부정할 것을 예언한 바로 그 자리다.

서양 혹은 기독교의 시각에서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식사로 여겨지는 최후의 만찬이지만, 되레 그렇기 때문에 세부사항은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최후의 ‘만찬’, 즉 식사이니 세부사항은 바로 음식이다. 과연 생의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는 열두 제자와 어떤 음식을 나눠 먹은 걸까? 물론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대표적 작품으로서 다 빈치의 그림이 많은 실마리를 주기는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예수 사후 근 1,500년 뒤의 작품이다 보니 세부사항에는 그의 시대도 반영되어 있다. 성경을 포함한 기록과 더불어 고고학 연구에서 밝혀낸, 메뉴를 비롯한 최후의 만찬 정황을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성안에 들어가면 물동이에 물을 길어가는 사람을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우리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過越節, Passover) 음식을 나눌 방이 어디 있느냐고 하십니다’라고 말하여라. 그러면 그가 이미 자리가 다 마련된 큰 이층 방을 보여줄 터이니 거기에다 준비해 놓아라”하고 말씀하셨다. (공동번역 성서 마르코 복음 14장 13~15절)

최후의 만찬: 시공간과 형식

사소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실 한 가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신약성서에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수는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후’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식사의 성격을 ‘만찬’이라 일컫지도 않았다. 성경 구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음식을 나누는’ 이 자리는 대체 언제 어디에서 벌어진 걸까?

최후의 만찬이 벌어진 시기를 밝혀내는 데는 물리학자들이 한몫했다. 일단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시기는 서기 30~36년인 가운데, 아이작 뉴튼과 콜린 험프리스는 천문학 자료를 바탕으로 31, 32, 35, 36년을 제외했다. 따라서 가능한 기간은 30년 4월 7일~33년 4월 3일 사이다. 여기에 험프리스는 최후의 만찬이 수요일 저녁에 이루어졌음을 근거로 삼아 날짜를 33년 4월 1일로 추산했다. 그렇다, 인터넷 검색으로 33년의 달력을 확인하면 4월 1일이 바로 수요일이다.

한편 장소는 공관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가의 복음서)에 의하면 현재 예루살렘 성전의 시온문(다윗의 문) 밖에 시온산에 있는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Cenacle)이다. 다윗왕의 묘와 더불어 성지인 이곳의 현재 건물은 14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다만 신약성서에는 지명을 특정하지 않으므로 예루살렘이 아닌 교외의 베다니(bethany) 같은 도시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 빈치의 그림에서 그렇게 묘사되어 있으므로 너무나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최후의 만찬은 식탁과 의자의 입식 환경에서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는 로마 관습을 따라 벽에 쿠션을 대고 바닥에 앉는 좌식 문화가 대세였으니,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렇게 식사를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과 갈릴리에서 발견된 유물로 미뤄볼 때 접시나 공기, 술단지 등은 석기였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몹시 번민하시며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하고 대놓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누구를 가리켜서 하시는 말씀인지를 몰라 서로 쳐다보았다. 그때 제자 한 사람이 바로 예수 곁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눈짓을 하며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보라고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께 바짝 다가앉으며 "주님, 그게 누굽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셨다. 그러고는 빵을 적셔서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아 먹자마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왜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더러는 예수께서 유다에게 명절에 쓸 물건을 사오라고 하셨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신 줄로만 알았다. 유다는 빵을 받은 뒤에 곧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공동번역 성서 요한복음 13장 21~30절)

최후의 만찬 메뉴

①빵과 와인

워낙 오래전의 일이다 보니 몇몇 음식들은 논란의 대상이다. 후대에 남긴 그림 등에는 등장하지만 당시의 정황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만찬의 식탁에 올라갔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 빈치의 그림만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붙박이 메뉴가 있으니 바로 빵과 와인이다. 예수가 빵을 자신의 몸에, 와인을 피에 비유하며 제자들에게 나눠준 것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 성찬식의 기원이기도 하다.

와인 포털 사이트 비비노(vivino)는 인류학자 및 와인학자의 도움을 받아 최후의 만찬에서 마신 와인의 실체를 조망했다. 일단 문서 기록이 1,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므로 포도의 품종을 짚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중동 일부 지역에서는 기원전 4,000년부터 포도를 경작해 와인을 빚은 가운데, 당시의 유물인 항아리에 적포도를 말려 와인을 빚었다는 구절이 남아 있다. 말린 포도로 와인을 빚으면 빠지는 수분만큼 맛과 향이 진해지는데, 오늘날 이탈리아 북부 발폴리첼라 지역의 아마로네(Amarone)를 통해 맛볼 수 있다. 아무래도 냉장 기술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한 시대이다 보니 와인의 부패와 산화를 막기 위해 몰약 등 나무의 수지를 더하고 석류, 사프란 등도 더했다고 추산한다.

한편 빵 또한 다 빈치의 그림에서 묘사된 것과 달리 누룩으로 부풀리지 않은 무교병이었다.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미처 시간이 없어 발효를 안 시킨 빵을 들고 나와 광야에서 일주일 동안 먹었다는 데서 유래해 과월절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발효를 시키지 않고 밀가루와 물로만 만들어 크래커에 더 가까운 이 빵을 맛초(matzo)라 일컫는다. 맛초는 그냥 먹기도 하지만 가루를 낸 뒤 계란과 닭기름 등을 더해 우리의 굴림만두와 비슷한 완자(맛초 볼)를 만들어 국물에 끓여 먹는다.

②양고기 논란

여태껏 최후의 만찬에는 양고기가 올랐다고 알려져 왔지만 이 또한 정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2007년, 당시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최후의 만찬 식탁에 양고기는 올라가지 않았을 거라고 공포했다. 최후의 만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과월절의 전통이었던 어린 양의 속죄와 희생 제사 전에 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궁극적으로 예수가 희생양을 대신했노라는 서사를 강화시킨다. 노파심에서 오해가 없고자 첨언하자면 양고기는 대다수의 기록에서 최후의 만찬 메뉴라 받아들여지고 있다.

③하로셋을 비롯한 과월절 요리

비록 양고기가 빠졌다고 해서 최후의 만찬에서 유월절 메뉴가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았다. 이탈리아의 고고학자들이 2015년에 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예수와 제자들은 쓴맛이 나는 허브와 함께 피스타치오와 대추야자로 만든 하로셋(charoset)을 먹었다고 한다. 하로셋은 과일과 견과류를 빻아 곤죽처럼 만든 음식으로,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벽돌을 만들 때 썼던 점토를 상징한다. 이름 또한 히브리어로 진흙을 의미하는 헤레스(cheres)에서 비롯되었다. 그밖에도 콩과 올리브, 박하를 닮은 허브인 히솝(hyssop)을 넣고 아주 약한 불에서 천천히 끓인 스튜인 촐렌트(cholent)도 먹었을 거라 추산한다.

④오렌지 조각으로 장식한 장어

‘최후의 만찬’의 가장 최근 복원은 21년에 걸쳐 1999년에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새로운 요리가 드러났으니 오렌지와 함께 접시에 담긴 장어였다. 왠지 예수의 시대에 흔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요리는 사실 다 빈치의 시대였던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대표적으로 짝지워지곤 했으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다 빈치의 장보기 목록에도 기록된 식재료이다.


음식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