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은의 야구민국] 제주고 야구부의 도발

입력
2021.08.05 05:32
"대한소프트볼야구협회장기 첫 경기 강원고 잡겠다" 
5월29일 1049일 만에 주말리그에서 감격의 1승 
박재현 감독 "제주도에 야구 바람 일으키고 싶어"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은 예매하지 않겠습니다. 강원고 야구부를 반드시 잡겠습니다!"

제주고 야구부 선수들은 전국대회에 참가하려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 으레 왕복 티켓을 끊는다. 1승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4일부터 강원도 횡성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야구소프트볼야구협회장기 대회 참가를 준비하면서 돌아오는 비행기 편을 예매하지 않았다. 박재현 감독의 결정이었다. 승리를 통해 체류 일정을 늘리겠다는 포부를 그렇게 밝힌 것이었다. 학교 관계자 모두 "너무 큰 도전 아니냐"면서 말렸지만 박 감독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는 "어느 때보다 선수들의 사기가 높다. 반드시 승리를 기록하고 돌아오겠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전체 선수 11명, 그래도 1승을 꿈꾸는 이유

제주고에게 있어 전국대회 1승은 정말 큰 꿈이다. 우선 선수가 11명뿐이다. 3학년은 한 명도 없고 2학년 8명에 1학년 3명이다. 올 3월에 합류한 코치 1명이 7월을 끝으로 경남의 모 대학의 자리를 옮기는 바람에 코치진도 박 감독 한 명이 전부다. 박 감독 홀로 감독, 코치, 부장 1인 3역을 하고 있다.

인원 부족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심지어 경기에 들어가기 전 타격 연습도 못한다. 공을 받아줄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소 수비 훈련을 할 때는 박 감독이 한 손에 방망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글러브를 낀 채 펑고를 쳐주면서 돌아오는 공을 받는다.

훈련도 힘든 상황에서 몇 달 전 제주도를 들썩이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5월29일에 제주고 야구부가 2018년 7월 이후 1049일 만에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기장 현대차드림파크 경기장에서 벌어진 부산공고와의 주말리그 경기에서 감격의 1승을 낚아 올렸다. 이날 경기에는 특이한 풍경이 연출되었다. 부산공고가 부산에 소재한 팀이었음에도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제주고 야구부를 응원했다. 그만큼 제주고 야구부의 첫 승은 제주도를 넘어 부산 야구인들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이날 제주고가 승리하자 야구장은 한 마디로 축제 분위기였다. 주말리그 우승도, 전국대회에서의 승리도 아니었지만 제주도에 있는 방송사와 언론사에서 취재를 왔을 정도로 큰 뉴스였다.



내년에 제주일중에서 선수 9명 입학, 선수 기근 해결될 듯

박 감독에 따르면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분위기다. 선수들이 시합에 나설 때마다 경기력이 향상되는 게 눈에 띌 정도로 실력이 쑥쑥 자라고 있다. 내년에는 제주중에서 9명의 선수가 올라온다. 이 또한 팀의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 박 감독은 "올해 2학년 1학년 선수들이 실전경험을 많이 쌓았기 때문에 내년부터는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일단 아이들이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성장해야겠지만, 이 선수들과 함께 제주도에 꼭 야구붐을 일으키고 싶습니다."

박 감독은 진정한 제주도 출신 프로 선수 배출도 기대하고 있다. 제주도 출신으로 프로에서 뛰거나 국가대표에서 활약한 선수는 배출했지만, 제주도에서 초중고를 모두 나온 선수는 한명도 없다. 박 감독은 제주도에서 태어난 제주고 야구부원 중에 반드시 프로로 진출하는 선수가 나오도록 하겠다는 마음이다. 더 나아가 "제주도에 프로야구팀을 유치하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바람의 섬' 제주도에 야구 바람을!"

현재 제주고 야구부의 프로 연고 구단은 서울 팀들이다. 2주 전 LG 구단에서 연습용 공 500개를 내려주기도 했지만, 3개 팀의 스카우트 중 한 명이 제주고가 서울 연고 팀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존재감이 크지 않다. 유니폼, 장갑, 음료수, 배팅머신 등의 지원품도 박 감독이 선후배들을 찾아다니며 받아낸 것들이다. 인지도와 실력 면에서 갈 길이 멀다.

박 감독은 "선수들이 승리에 대한 열망으로 한 사람처럼 똘똘 뭉쳐있다"면서 "8월5일 경기에서 전국대회 1승을 꼭 쟁취해 '바람의 섬' 제주도에 제대로 된 야구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 역사적인 사건을 기대해달라"며 주먹을 불끈 쥐어보였다.

제주고 야구부는 홈팀인 강원고와 5일 오전 10시부터 일전을 벌인다.



제주=박상은 기자 subutai117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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