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낮은 단계의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이후 속도를 내고 있는 통일부의 남북 교류 추진 배경에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가 있는 셈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남북대화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정부의 의도로 해석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3일 한국일보에 "청와대와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달 방한 당시 대북 인도적 지원과 낮은 단계의 몇 가지 남북 교류·협력 사업 추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남은 것은 북한의 호응 여부"라고 밝혔다. 다른 정부 관계자도 "유엔 안보리 제재를 돌파하려는 어려운 시도보다 작은 협력부터 성과를 내자는 취지"라고 부연했다.
셔먼 부장관은 지난달 23일 방한 당시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대화로 유인하기 위해 인도적 지원을 할 계획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팬데믹 상황에서 가장 힘든 상황에 직면한 북한 주민들에게 공감한다"고 답했다. 그는 당시 외교부와 통일부뿐만 아니라 청와대를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했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차관급인 셔먼 부장관을 맞이한 배경은 미국과 남북 협력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셔먼 부장관은 미 국무부 내 대표적 '한반도통' 인사다.
미국의 호응을 확인한 후 정부는 기민하게 움직였다. 통일부는 남북 통신연락선 복원 후 지난달 30일 대북 지원 민간단체가 신청한 인도협력 물자 반출 2건을 승인했다. 지난해 9월 북한군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서해 피격 후 10개월 만이었다. 통일부는 "인도주의 협력에 관한 사항은 요건을 충족시킬 경우 지속적으로 승인해 나갈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이 낮은 단계의 남북 교류·협력 사업 추진에 공감대를 보인 것도 상당한 진전이다. 유엔 안보리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 △스포츠 교류 △접경지역 재난·재해 관리 △방역 협력 등이 우선순위에 오를 전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방역, 재난·재해 관리 협력도 허용하지 않았다"며 "바이든 정부가 이를 지지한다면 상당히 변화한 입장"이라고 했다.
관건은 북한의 호응 여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국경을 봉쇄한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받을지가 불투명하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일 한미연합군사훈련 취소를 요구한 것도 변수다. 한미훈련을 빌미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손짓을 거부할 가능성도 크다. 홍 연구위원은 "북한도 협상에 임하는 미국의 태도와 한국의 의지를 시험대에 올려 놓고 대화에 나설지 계산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