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빈 엄지척, 김우진의 해피엔딩

입력
2021.08.03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울 줄 알았다. 태권도 국가대표 이다빈(25) 선수가 2020 도쿄올림픽 여자 67㎏ 초과 결승에서 밀리차 만디치(30ㆍ세르비아)에게 졌을 때 그런 예상을 했다. 태권도 종주국 선수가 금메달을 못 따면 죄인이 되는 분위기가 없잖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다빈은 울긴커녕 미소를 지으며 상대방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졌는데도 승자 같은 이다빈과 패자에게 허리 숙여 경의를 표하는 승자의 품격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을 보여줬다.

□ 금메달의 부담감은 양궁도 태권도 못잖다. 그러나 남자 양궁 개인전 8강에서 고배를 마신 김우진(29)은 ‘충격’이란 취재진의 질문에 “스포츠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래서 열광할 수 있다”는 현답을 내놨다. 그는 “내가 쏜 화살이고, 한 번 쏜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며 “그게 삶이다. 어떻게 해피엔딩만 있겠냐”라고 되물었다. 높이뛰기에서 4위에 그친 우상혁(25)의 긍정 바이러스는 경기장도 들썩이게 했다. '아쉽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도전을 안 했다면 후회했겠지만 도전했고 가능성을 봐서 후회는 1도 없다”고 했다. 세상의 모든 4등을 향해선 “즐겁게 계속 도전하면 못 이길 게 없다”고 응원했다.

□ 2016 리우올림픽 금메달 4관왕인 시몬 바일스(24·미국)의 기권도 신선했다. 욕먹을 게 뻔한데도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것보다 마음과 몸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의 선택은 공감을 불렀다. 영웅이 되기보다 선수도 인간이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선 포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 인생이 경주라면 우린 모두 선수다. 무한경쟁 시대 승자만이 인정받는 독식사회에서 우린 속으론 골병이 들어도 내색도 못한 채 버틸 걸 강요받는다. 그러나 때론 질 수도 있고, 힘들면 기권해도 괜찮다는 걸 선수들은 보여줬다. 국가란 거대 담론이나 주변의 시선이 아니라 스스로 부여한 가치가 더 중요하다. 인생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스토리다,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우린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경기에선 졌지만 우리 가슴엔 금메달로 남은 '유쾌한 패자'들이 준 위안과 용기다. “덕분에 짜릿했고 많이 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모든 선수에게 날리고픈 엄지척이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