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조브넬 모이즈(53) 아이티 대통령 암살 사건이 수사 과정에서도 미스터리가 증폭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진상 규명을 위해 증거를 수집하던 법원 관계자들은 살해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법의 보호를 받긴커녕, 되레 몸을 꽁꽁 숨겨야 하는 위태로운 처지다.
게다가 사건 발생 한 달이 다 되도록 암살의 진짜 배후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수십 명을 체포했으나, 아직 단 한 명도 법정에 세우지 못했다. 일국의 현직 대통령이 개인 사택 침실에서 살해당한 초유의 사건인데도, 여러 장애물 탓에 철저한 수사가 지연되면서 혼돈만 거듭하는 모습이다.
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모이즈 대통령 피살 사건 증거를 수집하던 법원 관계자 3명이 신변 위협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사건 당일인 지난달 7일,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통령 사저 범행 현장을 찾아 대통령 시신을 직접 확인하고 부검 과정에도 참여한 카를 앙리 데스탱 페티옹빌법원 치안판사는 “사건 이틀 후 신원미상인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진술서를 수정하라’고 협박해 왔다”고 말했다. ‘거부할 땐 살해하겠다’는 위협도 함께 가해졌다고 했다. 일주일 후엔 ‘널 지켜보고 있다’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마저 받았다.
같은 법원 서기 마르셀린 발렌틴과 와키 필로스틴도 살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렸다. 두 사람은 암살 사건 발생 이후, 범인 추적 과정에서 벌어진 총격전 도중 숨진 용병들의 시신을 검시하고 구금된 유력 용의자들의 진술을 기록하는 등 핵심 증거를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성이 사무실을 찾아와서 △증인 진술 수정 △용의자 자백 내용에 유명 정치인ㆍ사업가의 이름 추가 등을 요구했다는 게 발렌틴의 주장이다. 이를 거부하자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머리에 총알이 박힐 것”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했다. 필로스틴도 비슷한 위협에 노출됐다고 한다.
문제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세 사람이 검찰과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렌틴은 “(당국은) 사건의 진실을 찾으려는 어떤 의지도 없다”고 일갈했다. 이 사건 수사를 두고 ‘시작부터 비리로 훼손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범죄 실체 규명은 물론 ‘사법 방해 행위’에도 미온적인 이런 움직임이 수사 당국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NYT는 전했다.
의심스러운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두 서기는 “우리가 수사판사(경찰 지휘ㆍ기소 담당)와 함께, 대통령 사저에 동행했을 때 수많은 ‘위법 행위’를 목격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경찰이 용의자들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일부 증거를 빼돌린 데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범죄 현장 접근을 9시간 동안 차단했다는 것이다. 앞서 CNN방송도 소식통을 인용, 법원 서기들이 지역 경찰관 증언을 수집하거나 대통령 사저 인근 폐쇄회로(CC)TV를 보는 것을 저지당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사건 발생 26일이 흘렀지만, 수사도 뚜렷한 진척이 없다. NYT는 “콜롬비아인 용병 18명을 포함, 현재까지 유력 용의자로 체포된 44명 가운데 단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직까지도 범죄 입증을 위한 증거를 완전히 확보하지 못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레옹 찰스 아이티 경찰청장은 이 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모이즈 대통령 암살 당일, 그와 함께 총에 맞았던 부인 마르틴 모이즈 여사도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날 미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총성이 들렸으나 (집에) 30~50명의 경호원이 있기 때문에 괴한들이 침실에 들어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예상과 달리, 피격 이후에도 경호원들은 오지 않았다.
실제로 이때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아이티 경찰은 이와 관련해선 입을 닫고만 있다. 모이즈 여사는 “경호원은 통상 대통령 사저에 상주하며, 명령 없이는 떠나지 않는다”며 “아마 (누군가로부터 대통령 사저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아이티 권좌를 둘러싼 정치적 암투 속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모이즈 대통령 암살을 총지휘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