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품은 호수, 산멍~ 물멍~ 하다 그리움에 멍들다

입력
2021.08.0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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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진안 용담호와 운일암반일암 계곡

호수를 보면 절로 차분해진다. 바다와 달리 거센 파도가 없고, 강물처럼 물살도 세지 않다. 잔잔한 수면은 요동치는 마음을 다듬고, 허둥대는 마음을 진정시킨다. 용담호는 2001년 용담댐 건설로 생긴 호수로, 전북 진안군 용담면을 중심으로 6개 읍·면에 걸쳐 있다. 수면 아래에는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정겨운 들판과 마을이 있었고, 오순도순 정을 나누는 이웃이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당연히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겠지만, 이제 그마저도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돼 물밑에 가라앉았다. 20년이 흐른 지금 61㎞ 도로가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두르고 있다. 수몰된 지역에서 올라 앉은 마을을 연결하는 길이다. 멍하니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작은 공원과 마을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물멍’ ‘산멍’ 하다가 끝내는 옛 시절을 되새기며 그리움에 멍드는 길이다.


끝내는 ‘그리움멍’…61km 용담호반 드라이브

용담호반 드라이브는 댐 바로 아래 용담면 송풍리 ‘용담가족공원’에서 출발한다. 12가지 동물을 형상화한 십이지상 조형물과 분수, 어린이 놀이시설 등이 설치된 마을공원으로, 한적하게 소풍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특이한 게 있다면 바닥에서 파악하기 쉽지 않은 용 문양이다. 공원 중앙을 관통하는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공중에서 보면 꿈틀대는 용의 형상이다. 용을 품은 호수, 용담(龍潭)을 시각화한 설계다.


용담면을 비롯한 일대는 고려 때인 1313년부터 구한말인 1895년까지 진안과 구분된 독립된 현이었다. 현의 동남쪽에 물줄기가 모이는 곳을 이렇게 부른 게 지명의 유래라고 한다. 그러나 댐이 들어서기 전까지 이곳에는 담(潭)이라 불릴 만한 저수지는 없었다. 단지 안천·주천·정천이라는 세 개 하천이 모여 용담면에 이르러서야 작은 강을 이루는 정도였다고 한다. 댐이 들어서고 담수가 시작되면서 하늘에서 본 호수의 모습이 승천하는 용과 닮았다 하니, 선인들의 선견지명에 후대 사람들이 감탄했다는 해석이 덧붙여진다.

용담가족공원에서 다리를 건너 숲길로 조금 들어가면 ‘섬바위’가 있다. 댐에서 흘러내린 물이 금강을 형성하는 첫 번째 물굽이에 그림처럼 솟은 작은 바위섬이다. 기암괴석 틈새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운치를 더해 잠시 비밀의 정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강물은 유유히 흐르고, 강가에는 넓게 자갈밭이 형성돼 있어 요즘은 캠핑 여행객이 즐겨 찾는다. 강물에 몸을 담글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수심이 깊고 유속이 빨라 절대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곳곳에 걸려 있다.



섬바위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용담댐이고, 물문화관 주변에 조각공원이 조성돼 있다. 대형 토목공사를 마치면 으레 설치하는 기념 조형물과는 성격이 많이 다르다. 조붓한 산책로를 따라 200여 점의 조각작품이 이어진다. 이웅휘 환경조각가가 폐 철제와 깡통, 버려진 생수통으로 만든 작품이다.

‘누가 새의 날개를 꺾었는가’ ‘화가 난 생명체’ ‘지구 구하기 훈련 중’ 등은 작품 이름부터 도발적이다. 물 관리를 위해 댐 건설이 불가피했다고 얼버무리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대규모 공사로 인한 환경파괴에 대한 반성과 미안함이 담겨 있다. 용담댐도 환경파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직설적 고발인 셈이다.

작품은 불편한데 발랄하다. ‘인생길’ ‘공존의 합창’ ‘환경 오케스트라’ 등은 자연 파괴에 대한 성찰뿐만 아니라 인생살이에 대한 깊은 철학을 담고 있다. ‘어릴 적 외갓집의 기억’ 같은 작품은 사라져가는 추억을 아련하게 되살린다.

수몰지역 주민들의 옛 추억을 돌이키는 장식물은 호반도로 곳곳에 있다. 상전면 ‘망향의광장’에 세워진 전망대에 오르면 앞뒤로 용담호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전망대에는 ‘고향 그리운 집’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광장에는 ‘운암마을 망향비’가 세워져 있다. ‘구름바위’ 운암마을은 주막뜸∙강변뜸∙골뜸∙아래뜸 중부골 등 여러 자연부락에 70여 호가 오순도순 살던 곳이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찐 감자 하나라도 나누어 먹을 줄 알았으며, 어느 한 집에 경사가 있으면 너나없이 제 일처럼 기뻐하였고, 어쩌다 누구에게 힘든 일이 닥치면 우르르 달려가 십시일반 도우며 걱정과 슬픔마저도 같이 나누며 살았다’는 그 시절 분위기도 적었다. 마을은 물 속에 잠기고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 인심만은 더 넓게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바로 옆에는 ‘상전초등학교 총동창 기념비’가 있다. 1935년 개교해 1999년 문을 닫기까지 3,000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 역사를 새겼다. 이제는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된 모교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호수 북쪽 용담면에도 ‘망향의광장’이 있다. 이곳 유물은 근대 이전의 역사로 거슬러 오른다. 전망대 옆 언덕배기에 ‘태고정’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조선 현종 때인 1666년 용담현령이 지은 정자로, 수몰 위기에 처한 것을 옮겨왔다. 망향비는 ‘숲거리 징검다리를 건너 천변 벼랑에 오르면 육중한 도리 기둥에 받쳐 서 있는 태고정’이라 묘사하고 있다. 그윽한 역사의 향기를 지닌 향교와 의연함을 잃지 않은 노송도 있었다니, 한적하게 글 읽고 풍류를 즐길 만한 공간이었을 듯하다. 향교와 노송은 끝내 물에 잠기고 정자만 홀로 이전했으니 양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호수가 더욱 헛헛하다.



정자 뒤에는 삼천서원 묘정비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비석과 나란히 세워져 있다. 삼천서원의 건립 경위와 배향하는 인물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삼천서원은 진안군의 유일한 사액서원이었다.

이곳에서 주천면으로 이동하면 용강교 도실교 선화교 신정교 등의 교량을 차례로 지난다. 모두 호수와 육지가 넘나들이하는 지점을 연결하는 다리다. 거울같이 맑은 수면에 구봉산을 비롯한 진안고원의 높은 산줄기가 그림자처럼 비친다. 다니는 차량이 많지 않고, 곳곳에 차를 댈 공간이 있어 조용하게 ‘물멍’ ‘산멍’ 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 해질 무렵이면 마음속 깊은 곳까지 노을이 물든다. 그리움에 멍드는 곳이다.



깊은 산골 차가운 계곡, 운일암반일암

용담호로 흘러 드는 물줄기 중 하나가 운장산(1,126m) 기슭을 타고 내리는 주자천이다. 용담호 북측 주천면 소재지에서 완주로 넘어가는 도로는 주자천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다. 지금은 번듯한 아스팔트 길이지만, 70여 년 전까지 깎아지른 절벽에 길이 없는 곳이었다. 돌과 나무가 무성한 계곡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는 건 오직 구름뿐이었고, 설사 걷는다 하더라도 해가 짧아 하루에 반나절밖에 이동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자천 계곡의 다른 이름은 ‘운일암반일암’이다.



도로가 나고 접근은 편리해졌지만 지형은 그대로여서 한여름이면 계곡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특히 명덕봉(845m)과 명도봉(863m) 사이 약 5㎞에 이르는 계곡은 진안을 대표하는 피서지다. 용소바위 쪽두리바위 천렵바위 대불바위 등 집채만 한 기암괴석이 곳곳에 흩어져 있고, 산자락에서 흐르는 맑고 시원한 물이 크고 작은 폭포와 소를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물이 깊지 않아 계곡 전체가 물놀이에 적당한 조건을 갖췄다. 닳고닳은 암반 사이에 차가운 물이 고이면 그곳이 바로 천연 풀장이다. 물론 수심이 깊은 곳은 출입금지다. 마을 주민들이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목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발열 체크를 하고, 위험 지역 출입을 통제한다.


아무리 철저하다 해도 사람이 몰리는 곳은 꺼려지는 시절이다.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 계곡 중간쯤 하천을 가로지르는 무지개다리에서 하류 국민여가캠핑장까지 약 1km 구간에 숲길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계곡과 나란히 산자락으로 이동하는 길로, 이름처럼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서늘한 숲길이다. 참나무와 소나무,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바닥에는 조리대가 빼곡하게 덮여 있다. 경사가 거의 없는 완만한 목재 덱 산책로로, 곳곳에 놓인 벤치에서 쉬어가도 좋다.


진안=글ㆍ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