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펑펑' 4위라고요? ... "나는 당당한 4위, 행복합니다"

입력
2021.08.0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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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에서 ‘4위’는 눈물과 아쉬움의 상징이다. 정말 빼어난 결과를 냈지만 간발의 차로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아쉬움에 선수들은 주저앉아 울먹이곤 한다. 하지만 이번 도쿄올림픽에선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비록 메달을 코앞에서 놓쳤지만 “충분히 잘했다” “다음 올림픽에서 더 잘하면 된다” “축제를 충분히 즐기고 싶다”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 ‘다이빙 간판’ 우하람(23)은 3일 3m 스프링보드에서 4위를 차지한 뒤 "비록 메달은 못 땄지만 기분이 안 좋진 않다. 올림픽 4위를 한 것 자체도 영광"이라고 밝혔다. 4위를 한 뒤 가장 활짝 웃은 이는 1일 남자 높이뛰기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운 우상혁(25)이다. 그는 경기 뒤 “행복한 밤이었다. 가능성을 봤기에 후회는 없다”며 활짝 웃었다. 아쉬움을 토로할 것이라는 취재진의 지레짐작과 완전 달랐다.

우상혁은 결선에서 2m35를 넘으며 한국 기록(종전 1997년 이진택 2m34)을 24년 만에 다시 쓰고도 3위와 2㎝ 차이로 4위를 차지했다. 그는 다음 날 기자회견 내내 금메달리스트 못지않은 밝은 표정으로 “행복하고 즐겁게 뛰었다. 선수촌에 복귀해 영상을 수차례 돌려봤는데 아직도 꿈만 같다”고 했다.

그는 “첫 올림픽이었던 2016년 리우 때는 선수촌 방에만 있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사진도 추억도 없었다. 전 세계 축제를 즐기지 못해 후회스럽고 창피했다”고 했다. 이번엔 달랐다. 경기 후 우상혁은 같은 종목 금메달리스트 지안마르코 탐베리(29·이탈리아)와 함께 남자 100m 결승전을 응원했다. 그의 선수용 AD 카드엔 각국 선수들과 교환한 배지가 여러 개 달려 메달만큼 빛나고 있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4위에게 “쿨하게 떨쳐버리고 다시 도전하면 즐거워진다”고 메시지를 전했다. 우상혁의 개인 SNS에는 “아깝게 메달을 따지 못하고도 행복해하는 모습에 감동했다”는 응원 댓글이 수천 개나 줄을 이었다.

여자 역도 이선미도 2일 87㎏급에서 4위(합계 277㎏)에 올랐다. 3위 사라 로블레그(미국·282㎏)나 2위 에밀리 캠벨(영국·283㎏)과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 아쉽지 않느냐라는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이선미는 오히려 “로블레스와 캠벨이 경기를 잘했다”고 경쟁자를 인정했다. “첫 올림픽이니까 실망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자신을 격려했고, 내년 아시안게임과 2024 파리올림픽을 대비하겠다며 의지를 밝혔다. 이선미는 지난해 허리 부상으로 오랜 시간 재활을 거치며 어렵게 출전권을 따내 이번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있었다.


‘늦깎이 사수’ 한대윤(33)도 2일 남자 25m 속사권총에서 4위를 했다. 리유에홍(중국)과 메달이 걸린 슛오프 끝에 사대에서 내려온 그는 코치와 함께 선수 대기석에 앉아 밝은 표정으로 나머지 선수들의 메달 경쟁을 지켜봤다. 한대윤의 경기를 지켜본 이들은 안타까워했지만 한대윤의 얼굴엔 미소가 어렸다.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한대윤은 한국 속사 종목의 역사를 새로 썼다. 1988년 사격에 결선 제도가 도입된 이후 이 종목 결선에 오른 한국 선수는 한대윤이 처음이다. 그는 “앞으로 총을 그만 쏠 것도 아니니, 이번 경험을 잘 살려서 더 성장하겠다”며 “파리올림픽에서는 지금보다 단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체조 마루운동의 류성현, 역도 남자 67kg급 한명목, 유도 여자 78kg급 유현지, 사격 10m 공기소총 혼성 남태윤-권은지 등도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4위에 올랐다. 노메달리스트가 아닌 '당당한 4위'인 이들은 벌써 파리올림픽을 겨냥하고 있다.

강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