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영화들이 남긴 것

입력
2021.08.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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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대하여

정치인 한두 사람의 인기나 카리스마에 기댄 정치는, 막스 베버의 통찰처럼 미성숙 사회의 한 표징이다. 정당·의회 민주주의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부각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병증이라고 할 수도 있다. 히틀러의 파시즘이, 허다한 사이비 종교가 그 예다.

정치인에 대한 과도한 팬덤 현상은 그래서 위험하다. 권력에 중독된 이들은, 연예기획사들이 소속 연예인을 띄우듯 이미지 조작으로 팬덤을 돋우고, 그 과정에서 정책은, 민주주의 시스템은 주변화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멋진 파격과 성공 신화를 일군 정치인이다. 대중적이고 열정적인 화법과 트레이드마크였던 푸근한 웃음, 친근한 외모도 그의 값진 정치 자산이었다. 그의 비극적 죽음은 재임 중 여러 실정과 노동·재벌정책 등을 둘러싼 굴절을 덮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굳히는 데 극적으로 기여했다.

그의 존재는, 특히 죽음은, '친노' 진영 정치인과 지지세력에게 남긴 막강한 유산이 됐다. 변호사 시절 그가 맡았던 '부림사건'을 모티브 삼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 2013년 영화 '변호인',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을 주목한 2016년 다큐멘터리 '무현, 두 도시 이야기', 2002년 대선 승리의 과정을 그린 2017년 영화 '노무현입니다'까지, 한 개인을 소재로 한 위인전급 영화가 잇달아 만들어진 것도, 한국 정치사에선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영화들은 '친노'에게 엄청난 선전효과를 제공했지만, 한국 민주주의에는 장기적 폐해를 남겼다. 그의 정치는 끝나지 않았고, 그의 카리스마는 가면 쓴 이들에 의해 아직도 살아있다.

1979년 8월 9~11일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사태와 21세 노동자 김경숙의 죽음은 70년 전태일의 죽음으로 시작된 1970년대 노동·민주화운동의 종장이자, 두달 뒤 10·26의 도화선이었다. 그 국면의 여러 주역들과 야당 정치인 김영삼의 승부사적 면모를 하나로 꿴 영화는 아직 단 한 편도 없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