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베네수엘라 사상 첫 여성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새 역사를 쓴 '세단뛰기 스타' 율리마르 로하스(26)의 소감이다.
로하스는 1일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세단뛰기에서 15m67을 뛰며 이네사 크라베츠(우크라이나)가 1995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세운 15m50의 세계기록을 26년 만에 넘어섰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최초의 여성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린 것에 대해 로하스는 "그 말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등장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를 통해 여성 선수들이 메달을 거머쥐는 문이 열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기회의 확대를 외친 그의 소감이 남 다른 이유가 있다. 로하스 본인이 가난과 성소수자라는 편견을 딛고 세계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는 약자와 연대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외곽의 가난한 목장에서 태어난 로하스는 10대 때부터 운동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다. 특히 배구에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시설이 열악해 제대로 된 훈련을 이어갈 수 없었다. 육상으로 전향한 뒤 포환던지기와 높이뛰기 등을 병행하다가 2014년부터 세단뛰기에 집중했다.
그는 2016년 리우올림픽 세단뛰기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7년 런던, 2019년 도하 세계육상선수권을 제패했고, 지난해 실내 여자 세단뛰기 세계신기록(15m43)을 세우며 2020년 세계육상연맹 선정 여자부 최고 선수로 뽑혔다.
로하스는 성소수자임을 당당히 밝히고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가디언은 로하스를 "자랑스러운 레즈비언이자 저명한 'LGBTQ(동성애자·양성애자·성전환자 등의 성소수자)' 운동가"라고 소개했다. 그는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베네수엘라의 기수를 맡기도 했다.
"내가 게이이고 올림픽 챔피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지난달 26일 매티 리(23)와 짝을 이뤄 남자 싱크로나이즈드 10m 플랫폼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영국 톰 데일리(27)의 수상 소감도 잔잔한 감동을 줬다.
그가 시상대에서 눈물을 흘리자 영국 가디언은 "데일리는 2013년 영국 스포츠계에선 드물게도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공개해 적지 않은 소동을 겪었다"며 "데일리의 눈물에는 그가 견뎌 온 희망과 실망, 절망과 기쁨이 모두 녹아 있다"고 전했다.
데일리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나는 성 정체성 때문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올림픽 챔피언이 돼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금 아무리 외로워도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힘줘 말했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가운데 가장 많은 성소수자가 출전한 대회다. AP통신은 이번 올림픽에서 스스로 성소수자라고 밝힌 출전 선수가 168명으로 역대 가장 많다고 지난달 27일 보도했다. 지금까지 하계올림픽에 출전한 성소수자를 모두 합친 수보다 많은 인원이다. 로이터통신은 "도쿄올림픽은 가장 포용적인 대회로 기록될 전망"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