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다문 입술, 매서운 눈빛. 사대에 선 안산(20·광주여대)은 그 이름 '산(山)'처럼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이 '담대한 심장'을 앞세워 한국 스포츠 사상 첫 하계올림픽 단일대회 3관왕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안산은 30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6-5(28-28 30-29 27-28 27-29 29-27 10-8)로 눌렀다. 그는 혼성 단체전과 여자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 금메달까지 거머쥐며 3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안산의 가장 큰 강점은 높은 집중력과 실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다.
그는 준결승과 결승에서 잇달아 '슛오프'까지 가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했다. 슛오프는 똑같은 점수를 쏠 경우 10점에 가까운 쪽이 승리한다. 기회가 단 한 번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안산은 화살을 모두 10점 과녁에 꽂았다. 반면 결승 상대 오시포바는 8점으로 무너졌다. 대표팀 심장박동수를 측정했을 때 가장 편차가 없는 선수가 안산이다. 4강전 슛오프 화살을 쏠 때 안산의 심박수는 108bpm이었다. 이날 다른 선수들은 150bpm까지 치솟았다. 결승 슛오프 마지막 발을 쏠 때도 안산의 심박수는 117bpm이었다.
자신의 짧은 머리를 둘러싸고 억지스러운 여혐 공격이 불거졌지만 안산은 신경 쓰지 않았다.
8강에서 탈락한 강채영(25·현대모비스)은 "경기에 집중하는 게 중요해서 (안)산 선수가 그런 부분(여혐 공격)에 대해 얘기를 안 하는 편"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안산은 앞서 '왜 머리를 짧게 자르느냐'는 질문에도 "편해서"라고 간단하게 답했다.
안산은 어릴 적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그는 양궁을 시작한 초등학생 때 학교에 여자 양궁팀 신설을 요구할 정도로 당찼다.
그가 졸업한 문산초등학교는 원래 남자 선수만 육성했다. 안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양궁을 배우고 싶다고 요청했다. 문산초 교사들은 여자 양궁부가 있는 인근 학교로 전학을 추천했지만 안산은 꼭 이곳에서 배우고 싶다고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 양궁부가 창단됐고 문산초는 지금까지 남녀팀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 때 탄탄한 기본기를 다진 안산은 중학교 무대를 주름잡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다관왕도 낯설지 않다. 안산은 광주체중 3학년 때 문체부장관기에서 전 종목 우승(6관왕)이라는 새 이정표를 세웠다. 2017년 광주체고 진학 뒤에도 유스세계선수권 혼성전 은메달을 시작으로 2018년 아시안컵 3차대회 개인전 은메달, 2019년 WA현대월드컵 4차대회 개인전 금메달, 도쿄올림픽 테스트이벤트 개인전 금메달을 휩쓸었다. 특히 테스트이벤트 때 도쿄올림픽 경기가 열리는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합격점을 받은 점이 의미 깊다.
안산은 선수 시절 가장 힘들었던 시간으로 지난해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49위를 했을 때를 꼽는다. 그가 활을 잡은 뒤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순위였다. 절치부심한 안산은 추석 연휴도 반납하고 특훈을 실시하며 4위로 2차 선발전을 통과했고 3차 선발전에서는 순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이어진 두 차례 최종선발전을 3위로 마무리하며 도쿄 출전권을 손에 쥐었다.
무덤덤한 표정으로 잇달아 '10점'을 쏘던 안산은 3관왕이 확정된 뒤에야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세 번째로 오른 시상대에서도 눈물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씩씩한 모습을 되찾았다.
눈물을 닦으며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그는 낮은 심박수를 보고 '저혈압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농담 섞인 질문에 "건강하다"고 웃어 보이며 "내가 느끼기에는 심장이 빨리 뛴다고 생각했는데, 겉으로 표출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속으로 혼잣말을 계속하면서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며 "'쫄지 말고 대충 쏴'라고 되뇌었다. 지도자 선생님들이 너무 잘해주셨다. 모두에게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일부 누리꾼들의 억지스러운 여혐 공격에 마음고생이 컸겠지만 안산은 단단했다. 그는 한 외신 기자가 자신을 둘러싼 '온라인 학대'에 대해 질문하자 "경기력 외에 관한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겠다"고 답하며 끝까지 양궁에만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