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망신'으로 번진 안산 '페미 공격'…도 넘은 맹목적 혐오

입력
2021.07.3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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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딴 선수가 칭찬받기는커녕 '온라인 반(反)페미니스트 운동'의 표적이 됐다."(폭스뉴스)

"헤어스타일을 보고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온라인 학대(Online abuse)'는 한국 젊은 남성들 사이의 반페미니즘 정서에 기인한다."(로이터통신)

29일(현지시간) 외신들이 사상 첫 올림픽 양궁 3관왕에 오른 한국 국가대표팀 안산 선수를 향해 쏟아진 혐오 공격을 보도한 내용들이다. 머리카락 길이나 단어 사용, 출신 대학에 의해 소위 '페미니스트 딱지'가 붙고, 페미니스트는 공격 대상으로 설정되는 온라인에서의 흐름이 기삿거리로 쓰였다. 메달 수보다 사상 검증이 우선인 현상을 해외에서 그만큼 특이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맹목적 혐오로까지 치닫고 있는 국내 젠더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더러운 단어"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를 두고 불거진 때아닌 페미니즘 논쟁은 안산 선수의 짧은 머리 모양인 '숏컷(쇼트컷)'에서 시작됐다. "숏컷하면 다 페미(페미니스트)임" "여자 숏컷은 걸러야 됨" "여대 출신 숏컷은 90% 이상 페미" 같은 말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덮었고, '웅앵웅' '오조오억' 등 남성 혐오를 상징하는 어투를 쓴 게 페미니스트 증거라며 안 선수 SNS를 뒤져 공유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급기야 일부 남성들은 대한양궁협회에 안산 선수 금메달을 반납받으란 항의까지 했다.

주요 외신들은 겉모습이 페미니스트 판단 근거가 되고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이 큰 국내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전했다. 프랑스24는 "짧은 머리를 선택한 건 페미니스트란 의미라고 주장하는 남성들이 안 선수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며 "한국은 경제대국이자 기술강국이지만 여성 권리가 약한 남성 중심 사회"라고 표현했다.

카술리스 조 뉴욕타임스 서울지부 객원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헤어스타일이 아직도 특정 그룹 사이에서 논쟁거리일 정도로 반페미니즘 운동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로라 비커 BBC 한국 특파원은 "이번 공격은 자신들 이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을 공격하는 소수 인원의 목소리"라며 "한국이 성평등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번 문제도 정면으로 다뤄야 한다"고 썼다. 그는 "어떤 이유인지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더러운 단어가 됐다"고도 지적했다.


지켜보던 여가부 "혐오 안 돼" 입장 발표

상황이 심각해지자 여성가족부는 30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성 혐오적 표현이나 인권 침해적 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입장문을 급히 내놨다. 이번 논란이 정책 차원의 문제나 소관 법령과 직접 연관된 사안이 아니라 입장 표명 외의 적극적인 조치엔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여성계에선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수준을 고스란히 드러낸 국제적 망신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안산 선수가 짧은 머리로 비난받고 있다"는 BBC 공식 인스타그램에 해외 누리꾼들은 "도대체 머리가 무슨 상관이냐" "성과는커녕 외모 지적이라니 실망이다" "몇 연도에 살고 있냐" 등의 댓글을 달았다.

류형림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뜻에 머리 모양, 말투까지 갈수록 더 많은 것들을 포함시키고 있는 데다, 페미니스트는 남성을 혐오하는 나쁜 사람이니 공격해야 마땅하다는 인식까지 더해졌다"며 "페미니스트가 왜 욕처럼 소비되는지 이해할 수 없는 해외에서 이 현상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