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나 친숙한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은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무거운 입을 가지라는 의미일 것이다.
20년 전 미국 명문 사립고등학교 교장을 만날 기회가 있어 "이 학교의 어떤 교육이 명문대학 진학률을 높게 만드느냐"고 물으니 예상외의 응답에 필자가 무안해졌다.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성숙한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첫째 정직성, 둘째 명확한 자기표현, 셋째 진지한 경청을 스스로 체화하도록 학생지도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한 교육방법이나 고유한 선수(先修)교과과정을 기대하고 물었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정직과 소통'을 교육의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는 말을 듣고 머쓱한 심정을 감추기 어려웠다.
성숙한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의 하나가 소통이라면, 소통 자체가 본업인 정치지도자의 소통 의지와 역량은 양보할 수 없는 필수조건이다.
주요 이슈가 터졌을 때 책임 있는 공직자가 침묵으로 일관하면 과연 최소한의 입장이라도 듣고 싶고, 알고 싶어하는 다수의 기대에 누가, 어떻게 만족시킬 수 있을까?
보통 사람들의 사사로운 침묵과 정치인의 침묵은 차원이 다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이 난처할 때, 상대방이 곤란해지거나 갈등의 단초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을 때, 침묵의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국민의 공통이익과 국가의 보편적 목표를 실현해야 할 정치지도자는 비록 인간적·개인적 차원에서 침묵하고 싶은 내면적 동기가 존재하더라도 명확한 메시지 전달의 책무를 실행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의 침묵은 '금'이 아니고 자기존재의 부인이다. 지도자의 침묵과 공적 책임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국민들은 침묵해야 할 때 외치고, 당당히 소신을 밝혀야 할 때 침묵하는 지도자의 모습에 익숙해져 있다. 가짜뉴스를 접했을 때 절제의 침묵을 유지해야 함에도 오히려 궤변(?) 수준의 주장을 거침없이 토해내는 양상은 국민의 평균적 정치의식수준을 밑돌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 간 사상 유례없는 사법소송으로 이어진 갈등사태가 발생했을 때, 수습의 당사자인 내각의 수반이 당연히 명쾌한 입장을 밝혀야 했음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것을 다수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민주주의의 기본가치가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지도자의 명확한 입장이 표명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의 회피로 비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된 댓글 조작의 문제는 비록 당선의 유효성 문제와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민주주의 대의제도의 근간인 투표행위에 영향을 준 중대 사안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문제의 최종 종착지라고 할 수 있는 책임공직자의 분명한 입장이 표명되어야 한다. 설령 기술적 문제에 대한 판단착오가 있을 수 있고, 실체적 진실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 최고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온 이상, 민주주의의 기본가치를 지켜야 할 최고지도자가 직설(直說)로써 다수 국민을 납득시켜야 한다.
일부 국민과 정치지도자들은 대법원의 판결에 불만을 표하고 있고, 또 다른 국민들은 대법원의 판결이 적절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국민들의 정치적 지지성향에 따라 승복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고, 반대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투표행위에 어떠한 작위적 개입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철저히 준수될 때 명실상부한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생명력이 유지될 수 있다. 앞으로의 선거를 위해서도 이러한 원칙이 침묵 속에 묻혀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