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 갇힌 사육곰과 돌고래 

입력
2021.07.3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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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가슴곰 '오삼이'(코드번호 KM-53)가 지리산을 벗어나 경북 김천 수도산, 구미 금오산, 충북 영동, 전북 남원을 돌아다니는 동안 같은 멸종위기종인데 평생을 철창 속에 갇혀 지내는 반달곰이 있다. 단지 아종(분류학상 종의 하위 단계로 같은 종에서 유전적·지리적·형태적으로 더 세분된 개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웅담채취용으로 길러지는 사육곰이다. 이들은 철저히 소외되다 일탈 행동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이달 6일 경기 용인시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곰 한 마리가 사살됐다. 농장주가 당초 두 마리가 탈출했다고 밝히면서 용인시 등 관계기관은 20일 넘게 남은 한 마리를 찾기 위한 수색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경찰 조사에서 농장주는 "탈출곰이 두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라고 진술을 번복했다. 경찰은 농장주가 곰을 몰래 도축한 것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사이 주민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고, 행정력은 낭비됐다.

지난 주말 강원 화천군에 있는 사육곰 농장을 다녀왔다. 사육곰 구조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단체 카라가 최근 곰 14마리를 구조한 곳이다. 농장주의 부친은 정부의 곰 사육 권장 정책에 따라 1984년부터 곰을 길렀고, 농장주가 뒤를 이어 운영해왔다. 하지만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면서 농장을 접어야 했는데 곰들을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하던 차에 2019년부터 사육곰 농가에 해먹을 달아주는 봉사활동을 해온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 도움을 요청했다.

14마리는 운이 좋은 편이다. 동물단체가 힘을 모아 마련 중인 보호시설(생크추어리)로 갈 희망이 생겼다. 반면 대다수는 좁은 뜬장(배설물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밑면에 구멍이 뚫려 있고 땅에서 떨어져 있는 철창)에서 개 사료를 먹으며 살아가고 있다. 6월 말 기준 27개 농가에서 길러지는 사육곰은 웅담채취용 397마리, 불법증식된 전시관람용 23마리다.

반달곰은 먹이를 찾아 먼 곳으로 이동하고 육중한 몸매에도 시속 50㎞로 달릴 수 있다는데 평생을 갇혀 개 사료를 먹으며 지내야 하니 오죽이나 답답할까. 실제 농장 속 철창 안에 들어가 밖을 내다보니 정말 감옥 그 자체였다.

감옥에 갇힌 사육곰을 보자니 수족관 돌고래가 떠올랐다. 돌고래는 좁은 수조 내 얕은 수심에서 공연을 하고 만지기 체험 행사에 동원되고 있다.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비롯해 서울대공원에 살다 제주 앞바다로 돌아간 돌고래들이 바다를 누비며 무리를 이루고 사회교류를 하며 보내는 삶과 대조적이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난 돌고래들이 늘면서 수족관에 홀로 남겨진 돌고래만 마린파크 '화순이',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벨라', 한화 여수아쿠아리움 '루비' 등 세 마리다. 전문가들은 이 돌고래들의 건강 상태와 스트레스 정도가 매우 위험한 수준이라고 말한다.

사육곰 농장주와 수족관 운영자도 할 말이 있다. 모두 적법한 절차를 밟고 시작했다는 거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사육곰 웅담채취와 돌고래쇼회적 흐름에 뒤처진, 아니 역행하는 사업이 됐다. 사람들이 이익을 놓고 다투는 사이 남은 사육곰과 돌고래는 계속 죽어나가고 있다.

정부는 사육곰 보호시설, 돌고래 바다쉼터를 만든다고 하지만 둘 다 완성되기까지 수년은 기다려야 한다. 수용 능력도 부족하다. 그사이 또 얼마나 많은 사육곰과 돌고래가 희생될까. 정부와 시민 모두 지금이라도 사육곰과 돌고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한다.

고은경 애니로그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