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 대유행(팬데믹)부터 경제 위기, 물불을 안 가리는 기후 위기까지, 최근 들어 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는 경고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인류 문명이 파멸의 티핑포인트(tipping point·전환적 순간)에 이르는 순간, 최후의 생존 벙커가 될 수 있는 나라는 어느 곳일까.
2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 글로벌 지속가능성 연구소(GSI) 연구진이 인류 문명 붕괴 때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국가로 뉴질랜드를 꼽았다고 보도했다. 아이슬란드와 아일랜드, 호주 태즈메이니아, 영국 등이 뒤를 이었다.
과학 저널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통해 발표된 이번 연구는 환경 파괴와 기후 변화, 팬데믹 등 위기가 빈번히 인류를 급습하는 상황에서, 각각의 위협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글로벌 문명이 급격히 쇠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출발했다. 연구진은 각국의 △자체 식량 생산 능력 △대량 난민 유입 저지 능력 △전력 생산 능력 △물품 생산·제조 유지 능력 등 여러 역량을 분석한 뒤, ‘문명 붕괴 시에도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국가 후보군을 선정했다.
이번 연구에서 핵심 변수는 인류 문명 파괴의 상황에서도 일정 수준 인구를 유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른바 '붕괴 구명보트' 역할을 하느냐가 관건이었다는 얘기다. 대체로 인구 밀도가 낮은 ‘섬 국가’들이 적합한 피신처로 꼽혔다. 반면 경제적 효율성을 중요시하는 국가들은 약세를 보였다.
그 결과, '최적의 피난처'는 뉴질랜드였다. 낮은 인구 밀도(19명/k㎡)에다 지열·수력 발전을 통한 에너지 생산 능력, 풍부한 농경지를 통한 식량 생산 능력, 섬 국가의 지리적 고립성으로 인한 난민 유입 저지 능력 등을 갖췄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생존 잠재력이 가장 높다'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오히려 눈에 띄는 건 영국이 순위 안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연구를 진행한 알레드 존스 GSI 교수는 "영국이 높은 인구밀도와 50% 수준의 낮은 식량자립도를 가졌음에도, 풍부한 자체 에너지 자원과 첨단 제조 기술, 섬이라는 지리적 요건 등에 비춰 보면 '충분한 회복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각 나라들이 경제적 효율만을 강조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라며 유사 시 대처를 위한 대비분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비록 자체 식량·전력 생산 능력이나 난민 유입 저지 능력 등 유리한 여건을 갖추지 못한 국가들도 산업, 기술 등을 정비해 문명 붕괴 위기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존스 교수는 "(문명 붕괴에 대한) 전 세계적 대응에서 각 사회의 복원력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봐야 한다"며 "(물론) 빠른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