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접종 의무화'에 히틀러로 묘사된 마크롱... "법적 대응"

입력
2021.07.29 20:00
나치 제복 입히고 콧수염 단 광고판 등장
佛 시민들도 "도가 지나치다" 부정적 의견
게시자 "대통령 조롱하면 신성모독?" 반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자신을 나치 독일의 상징적 인물인 아돌프 히틀러에 빗댄 대형 포스터에 대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일부 시민들이 문제의 광고판을 훼손하는 등 프랑스 내부에선 일단 “지나친 묘사”라는 부정적 기류가 우세하다. 그러나 게시자는 “마크롱의 (강제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을 풍자하려 했을 뿐”이라며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8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 남부 바르주(州) 툴롱 거리에 있는 한 대형 광고판에 자신을 히틀러처럼 표현한 포스터를 붙인 미셸-앙주 플로리를 고소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포스터는 지난 16일 부착됐는데, 포스터 속 마크롱 대통령은 나치 제복을 입은데다 콧수염까지 있어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게다가 마크롱 대통령이 대선 직전 설립한 정당 ‘전진하는 공화국(LREM)’의 약자도 나치의 상징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또는 스와스티카)처럼 배치돼 있다.

플로리는 마크롱 대통령의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를 비판하기 위해 포스터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백신을 맞으라고 강제하는 건 의료 조치와 관련한 개인의 자유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독재’나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실제로 포스터엔 “순종하라, 백신을 맞아라”라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 마크롱 정부의 엄격한 방역 수칙에 따라 다음 달부터 프랑스에선 백신 접종 증명서인 ‘백신 여권’을 제시하지 않을 경우 식당이나 카페 등에 출입할 수 없다. 델타 변이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지만, 지난 주말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질 만큼 반발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프랑스 내부에선 이번 포스터에 대해 반감을 표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아무리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대한다 해도, 현직 대통령을 히틀러로 묘사한 건 도가 지나치다는 것이다. 일부 시민들은 광고판을 훼손하거나, 포스터 위에 ‘부끄럽다’는 낙서를 하기도 했다.

반면 플로리는 ‘표현의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날 지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마크롱 대통령의 고소와 관련해 “(소식을 접한 뒤)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트위터에도 “마크롱의 나라에서 예언자를 조롱하면 풍자지만, 대통령을 독재자라 조롱하면 신성모독”이라고 일갈했다. 지난 2015년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만평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당했던 테러 사건과 관련, 마크롱 대통령이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혀 왔으면서 이번엔 법적 조치를 취하는 이중성을 보인다고 비꼰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히틀러에 비유된 게 처음은 아니다. 2018년 12월에도 유사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토요판 표지를 장식했는데, 해당 디자인이 2017년 7월 히틀러를 표지 인물로 실은 미국 잡지 하퍼스 매거진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두고 부적절하다는 비판 여론이 일자, 당시 르몽드 편집장은 “표지 디자인에 충격을 받은 사람에게 사과한다”는 성명을 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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