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피부 없이 근육과 뼈로 된 팔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물론 진짜는 아니다. 에코르셰(사람이나 동물의 피부 밑에 있는 근육 조직이 드러나도록 그린 해부학적 소묘나 조각)에 주목해온 최수앙 작가의 작품 ‘손(2021년작)’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쉬지 않고 작업 활동에 매진해 온 작가는 2018년 여름 외과 수술을 받았다. 손과 팔에 무리가 온 탓이다. 물질을 붙여 나가며 형상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작업 방식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몸에 익은 익숙한 작업 방식과 떨어져 보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 본관에서 개막한 최수앙 작가의 ‘언폴드(Unfold)’는 작가의 ‘습관과의 거리 두기’가 잘 드러난 전시다. 극사실적 인체 조각을 하기로 유명한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언뜻 보기에 색동 저고리를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이는 ‘언폴디드 10G(2021년작)’는 형형색색의 조각들을 모은 듯한 작품이다. 평면 작업이지만 관객의 상상 속에서 얼마든지 입체적으로 변한다. '펼쳐진'이라는 뜻의 작품 제목에서도 의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최수앙 작가는 “조각가라서 입체 형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면성을 벗어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종이에 오일을 먹여 작업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기름을 먹이면 종이가 반투명해지는데, 물질의 속성을 드러낼 수 있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전시실에서는 예코르셰를 참조해 작업 중인 조각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각가들(2021년작)’이 나온다. 누워서 무언가를 만지는 모습, 작업대 위에 올라 허리를 구부리고 무언가를 잡으려는 모습 등을 하고 있는데, 어떤 것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작업물은 보이지 않는다. 맹지영 독립큐레이터는 “대상은 보이지 않지만, 대상을 만들었던 축적된 시간만을 암시하는 작업대는 그의 반복적 습관이 만들어내는 흔적이자 조각적 태도”라며 “이 작품은 과거의 최수앙이 붙들고 있던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만든 전환점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각가들’ 옆으론 드로잉 9점이 전시돼 있다. ‘프래그먼츠’ 연작이다. 몸 어딘가에 있을 법한 부분들이 화려한 색이 입혀진 상태로 그려져 있다. 작가는 뼈, 근육 등 인체 구성 요소를 임의로 선정, 이를 평면에 투사했다. 전시는 29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