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모 스치는 크레인훅, 갈라진 벨트... '끼임사고' 현장 불시 점검 동행해보니

입력
2021.07.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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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제조업 공장. 각종 설비의 안전 장치를 꼼꼼히 점검하던 감독관은 "그래도 이 정도 현장이면 아주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머리 위로는 크레인 훅이 안전모 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크레인 훅에 달린 홀더는 케이블 타이로 묶여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최대 3.5톤의 쇳덩어리를 옮기는 이 크레인에 훅 홀더를 사용하지 않다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밑에 작업자가 있다면 그 뒤의 상황은 끔찍할 게 뻔하다. 지난 2월 부산에서도 작업자 한 명이 천장 크레인에 매달린 13톤가량의 코일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전국 30인 미만 제조업 사업장 3,000여 개를 대상으로 '끼임 사고 일제 점검'을 실시했다. 이중 관악지청과 남부지청 및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감독관들과 함께 서울 서남부 일대 소재 사업장 두 곳을 동행 점검했다.

제조업에 많은 끼임 사망사고

고용부 통계를 보면, 국내 산재 사망자 발생 중 가장 빈도가 잦은 유형은 '추락'이고 그 다음은 '끼임'이다. 추락이 주로 건설현장에서 일어난다면, 컨베이어 같은 설비에 끼어 숨지는 끼임은 제조업체에서 대부분 발생한다. 지난해 끼임 사고 사망자만 해도 98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60%는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생겼다. 이날 고용부와 안전공단이 이들 사업장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불시점검에 나선 이유다.

그래서인지 안전모에 안전화까지 갖춘 감독관의 등장에 일순 얼어붙는 사업장도 있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현장 안전 점검'을 처음 받아보는 탓이었다. "공장장님, 크레인 훅 홀더는 이렇게 사용하시면 안 돼요. 여기 슬링벨트도 교체하셔야 합니다." 감독관의 지적이 이어지자 직원들은 어색한 듯 "아직 쓸 만은 한데"라며 더듬었다. 그러자 감독관은 녹슬고 갈라진 벨트 부위를 일일이 짚어가며 "이러다 끊어지면 물건 떨어지고 발 다쳐요"라고 설명했다.

감독관들이 세세한 지적을 이어가는 건 조그만 부주의가 사망사고로 이어져서다.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끼임 사망 사고 272건 중 절반 이상인 52.6%가 '가동 중인 기계 장치에 방호 장치가 없거나, 해제된 상태'에서 일어났다. '전원을 끄고 정비 중인데 다른 작업자가 이를 모르고 조작했을 때(10.7%)', '갑자기 기계가 멈췄을 때 전원 차단하지 않고 점검하다가(9.6%)' 등이 뒤를 이었다. 어찌 보면 사소한 부주의가 사람 목숨을 오가게 하는 것이다.


고용부 "영세사업장 설비 현대화 지원한다"

사출성형기는 대표적인 위험 설비다. 거대한 금형 쇳덩이가 양옆 또는 한쪽에서 벽으로 누르며 작동하는데, 지난 2월 충남 예산군에서는 사출성형기를 점검하던 작업자가 금형 사이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점검한 사업장의 경우 비상 제동장치가 발밑이나 손 닿는 곳에 설치돼 있었다. 설비 덮개를 열면 자동으로 멈추는 성능을 갖춘 곳도 있었다. 여건이 좋은 편이란 얘기다. 해당 사업장 안전담당자는 "설비를 수리해야 할 때면 제가 꼭 옆에 붙어서 지켜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선 설비만 현대화해도 재래식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최신 설비 중에는 사람 손이나 팔이 작동 중인 기계 안으로 들어가면 레이저가 이를 감지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는 기능도 있다. 하지만 3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의 경우 이를 구비할 여력이 없다.

점검 현장에 동행한 안경덕 고용부 장관은 "50인 미만 중소업체를 대상으로 위험 기계 및 설비, 공정 개선에 필요한 비용을 일부 보조하기 위해 추경까지 포함해 4,500억원 정도 예산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원이 필요한 사업장은 온라인(clean.kosha.or.kr) 등을 통해 연중 어느 때나 신청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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