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속 ‘문송 탈출’ 러시… "요즘 코딩 교육생 절반은 문과 출신"

입력
2021.07.2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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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박강호(가명)씨는 2년의 취업 준비 끝에 올해 초 국내 유명 IT 업체에 입사했다. 2019년 졸업 후 수십 군데 입사지원에 낙방한 그는 고민 끝에 게임 개발자로 일하는 친구의 권유로 전문 IT 교육 기관에서 1년여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박씨는 "비전공자여서 걱정했는데 기우였다"며 "과정은 힘들지만 문과생이라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프로그래밍 등 IT 과정을 배우는 문과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소위 ‘문송(문과여서 죄송합니다) 탈출’을 위한 몸부림이다. 주요 IT 교육기관들은 "최근 교육생의 70% 이상이 비전공자"라고 전할 정도다.

28일 IT 교육을 전담하는 패스트캠퍼스, 이노베이션아카데미 등에 따르면, 자신의 전공을 버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데이터 사이언스 등 취업용 IT 기술 학습에 뛰어드는 문과생 비중이 크게 늘었다.

패스트캠퍼스의 경우, 올 상반기 코딩 교육과 취업을 연계한 '네카라쿠배 개발자 양성 과정'을 밟은 수강생 가운데 72%가 이과생이 아닌 문과, 예술계 등 비전공자였고, 이 중 문과생만 해도 절반 가까이(48%)를 차지했다. '네카라쿠배'는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등 취업준비생이 선망하는 인기 IT 기업의 약칭이다.

이 업체가 운영하는 또 다른 IT 교육 프로그램 '스쿨'도 교육생의 71.8%가 비전공자다. 스쿨은 3, 4개월간 데이터 사이언스, 코딩, 디지털 마케팅 등 IT 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실무 기술을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정부 예산을 받아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프랑스의 IT 교육기관(에콜42)과 운영하는 코딩 학교(42서울)에도 교육생 가운데 문과생 등 비전공자가 더 많다. 42서울 관계자는 "비전공자와 전공자 비중이 6 대 4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문송 탈출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최근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구직자 설문조사에서 '코딩을 배우고 싶다'고 밝힌 문과생 응답 비율은 63.8%에 달했다.

물론 문과생이 코딩을 배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다. 42서울에서 코딩을 공부하고 지난달 IT 업체 개발자로 취업한 경영학과 출신 우인준씨는 "하루 12시간씩 주당 60, 70시간을 공부했다"고 전했다.

국내 대형 포털 B사에서 프론트 개발을 담당하는 이정우(가명)씨는 시각디자인 전공자다. 그는 "주변에 문과 출신 개발자가 늘고 있지만, 취직이 잘된다고 무턱대고 코딩을 배우려 하면 힘들 수 있다"며 "정말 적성에 맞는지, 개발자 일에 흥미가 있는지 돌아보고 길게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우아한 데크코스'처럼 회사 내에 아예 비전공자를 위한 개발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곳도 있다. 이 곳의 1기 수료생 중 23명은 사내에 남았고, 15명은 다른 IT 기업에 개발자로 취업했다.

삼성전자도 대졸자면 누구나 무료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공부할 수 있는 '삼성 청년소프트웨어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취업한 수료생 가운데 31%가 문과생 등 비전공자다.

패스트캠퍼스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취업 시장이 IT 기술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문송 탈출 행렬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연진 IT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