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어중간한 사람들에게

입력
2021.07.27 22:00
26면


얼마 전, 인터넷을 하다가 이런 것을 보았습니다. ‘어중간한 나와 이별하는 48가지 방법.’ 꽤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더라고요. 그만큼 자기 자신을 ‘어중간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그것을 타파하고 싶은 분들도 많은 모양입니다. 글에서는 어중간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더군요. ‘구체적인 실적이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어떤 일이든 중도에 포기가 쉽고, 몇 년간 한 가지 일을 계속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요.

분명 3~4년 전의 저라면 이 게시글을 열심히 읽고 밑줄도 쳤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글 속의 ‘어중간한 사람’의 정의에 전혀 동의할 수 없었기에, 글을 보다가 닫아버렸지요. 저는 분명히 어중간한 사람이지만, 고쳐야 될 문제라고 더 이상 생각지 않거든요.

지난 몇 년간은 제 자신이 싫었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뾰족하게’ 하나를 잘하고 성취를 이루어내는데, 왠지 나만 그러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저는 N잡러로 살아온 지가 9년 차 되었습니다. 상담을 하는 사람이면서, 청년정책 연구자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항상 베스트셀러 20위 정도를 기록하는 책 작가이기도 하고, 100번대 케이블 채널의 토크쇼 MC를 맡아 진행하고 라디오 DJ로 살아온 지도 6년여 된 방송인이기도 해요.

그렇게 살다보니 일주일의 삶이 이렇습니다. 월요일은 여행 프로그램의 MC로 지방으로 떠나 특산품을 먹고, 화요일은 청취자 사연을 읽고 음악을 선곡해 주다가, 수요일은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찾아가 상담을 하고, 목요일은 고립 청년들의 실태 연구 논문을 쓰는 뭐 그런 삶을 살지요. 그래서 ‘너는 정체성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저는 무엇이에요’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한길’만 파는 사람들이 저 멀리 뛰어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유튜브만 죽어라 파던 친구는 어느새 100만 구독자가 되어 있고, 책을 써 보고 싶다며 조언을 구해오던 친구는 한길만 파더니 최근 베스트셀러 1위를 했더군요. 그런 모습들 속에서 저는 항상 "내가 이렇게 ‘잔잔바리’인 것은 ‘어중간해서’다"라고 생각하곤, 그것을 부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지난날, 이 지면에 글을 쓰는 동안도 마찬가지였어요. 나는 한결같은 글을 쓰고 있는가? 어느 날은 정신건강 이야기를, 어느 날은 청년의 불평등을, 어느 날은 방송인의 시선으로 대중문화 칼럼을 쓰니, 깊이 있는 글이 아니지 않을까? 불안했지요. 하지만 마지막 글로 인사드리는 오늘, 깨달았습니다. 삼년 반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러 번의 개편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꾸준히 여러분을 뵐 수 있었던 것은 그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필자라서, 뛰어난 글 솜씨는 없어도 다양한 시선을 가진 덕분일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코로나19 이후, 저만치 멀리 가던 사람들이 휘청이는 동안에도 그냥 예전이나 지금이나 ‘잔잔바리’로 뫼도 낮고, 골도 얕은 인생을 살아가듯 말이지요.

이 지면에서 마지막으로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어중간하다고 생각하는 분, 세상의 다른 존재들보다 두드러지지 않음에 힘들어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우리의 어중간함을 사랑해 주자는 말을요.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갈대처럼, 우리는 어쩌면 세상의 다양한 풍파에도 살아서 느린 걸음이나마 계속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일지 모르니까요.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