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지급, 보편→차등 선호… 1년새 돌아선 민심

입력
2021.07.29 04:30
24면
소득 하위 88%·모두 25만원씩
5찬 지원금 방식 찬성 7% 그쳐
"선별적 복지 중요" 41→52%
"지원금 추가 지급 필요" 55%
불확실한 미래 상황 반영인듯


오랜 진통 끝에 5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과 금액이 결정됐다. 지난 23일 여야는 2차 추경을 통한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소득 하위 88%, 1인당 지급액은 25만 원으로 합의했다. 이번 5차 재난지원금은 대상자 선정 및 준비절차를 거쳐 빠르면 8월 말, 늦어도 추석 전까지는 지급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다섯 번의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지난해 5월 첫 번째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소득과 관계없이 가구당 40만~100만 원을 지급했고, 2~4차 재난지원금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고용취약계층 등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지급했다. 정부가 지급한 재난지원금과는 별개로, 경기도 등 다수의 지자체에서도 지역 주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재난지원금의 지원 대상 선정, 지원 금액, 실제 효과 등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국민 여론 및 체감 수준은 어떠할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팀은 지난 16~19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인식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했다. 재난지원금 지급의 필요성, 지원 대상 및 범위에 대해서는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가 한창이었던 지난해 4월 10~14일 진행했던 조사, 재난지원금의 효용성과 개개인이 체감하는 효과에 대해서는 1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거의 마무리된 지난해 6월 5~8일 진행했던 조사와 같은 문항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재난지원금 도입 전후 여론의 변동을 확인해 보았다.

재난지원금 지급, 여전히 필요하다는 인식 높아

코로나19 4차 유행에 따른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면서, 가정경제 상황 및 소비활동은 쉽사리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위기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반영하듯,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여론은 여전히 높았다. 응답자의 69%가 ‘국가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라고 답했고, 63%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여기에 더해, 응답자의 55%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재난지원금을 몇 번 더 지급할 수도 있다’라고 답해, 이번 5차 재난지원금을 끝으로 더 이상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37%)보다 우세했다. 1년 전과 비교해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소 낮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다수의 국민이 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지급 대상과 금액 선정, 1년 사이에 변화 보여

재난지원금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다수의 동의가 확인됐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어가, 누구를 대상으로 얼마를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론의 변화가 감지됐다.

1차 재난지원금 논의가 활발한 시점이었던 지난해 4월 초 조사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응답이 54%로, 소득·재산 수준 등을 감안해 선별적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응답(43%)보다 우세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는 정확히 반대였다. 모든 사람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응답은 44%에 그친 반면, 대상자를 선별해서 지급해야 한다는 응답은 53%로 높아졌다.

지급 금액에 대한 여론도 달라졌다. 지난해 4월 초 조사에서는 모든 대상자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49%)과 소득·재산 수준 등을 감안해 대상자별로 다른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48%) 간에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대상자별로 다른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응답이 55%로, 모든 대상자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응답(42%)을 앞섰다.

결과적으로 여론은 1년 사이에, 모든 국민에게 같은 금액을 지원하는 보편 지급에서, 대상자를 선정하고 그 안에서도 피해 수준에 맞게 금액을 달리 지원하는 차등 지급으로 옮겨간 모양새다. 지급 대상과 지급 금액에 대한 문항을 교차해 보면, 모든 국민에게 같은 금액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43%에서 34%로 9%포인트 줄어든 반면, 선정된 국민에게 금액을 차등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은 37%에서 45%로 8%포인트 높아졌다.

한편 이번 5차 재난지원금은 소득 수준에 따라 하위 88%의 국민을 선정하고, 선정된 국민은 모두 25만 원씩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대상자 선정, 동일 금액 지원’ 방식이다. 이번 조사에서, 이러한 방식을 선호하는 응답자는 전체의 7%에 그쳤다.

복지제도 태도에 대해서도 변화 조짐

재난지원금 지급에서뿐만 아니라, 복지제도 태도에 대한 변화도 감지된다. 지난해 6월 조사에서는 코로나19와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반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했을 때 ‘국민 모두에게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는 보편적 복지’가 중요하다는 응답(55%)이 ‘도움이 필요한 계층에게만 혜택을 제공하는 선별적 복지’가 중요하다는 응답(41%)보다 우세했다. 반면 이번 조사에서는 선별적 복지가 중요하다는 응답(52%)이 보편적 복지가 중요하다는 응답(44%)을 앞섰다. 진보층에서도 보편적 복지가 중요하다는 응답과 선별적 복지가 중요하다는 응답이 49%로 같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진보 진영이 주도적으로 보편복지를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추후 조사를 통해 이번 조사 결과가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복지제도를 바라보는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인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재난지원금 효용성 및 체감 사용 효과, 1년 사이 모두 감소

코로나19 이후 전 국민은 최소 한 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은 이보다는 더 많이 재난지원금을 지원받았다. 1차 재난지원금을 받은 직후인 지난해 6월 초 조사 결과와, 5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앞둔 이번 조사 결과를 비교했을 때 국민이 체감하는 효용성은 다소 줄어든 것이 확인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재난지원금 지급이 가정의 살림살이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은 지난해 6월 초 조사에서는 90%였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74%로 감소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경영난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 역시 85%에서 70%로 감소했다. 긍정 응답이 지난해 6월과 올해 모두 높지만, 온도 차는 다소 느껴지는 결과이다.

개개인이 체감하는 재난지원금 사용 효과 역시 1년 전보다 감소했다. ‘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인해 당장 써야 하는 생활비 지출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라는 응답이 지난해 6월 초에는 87%로 매우 높았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69%로 낮아졌다. ‘한시적으로나마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라는 응답 역시 59%에서 48%로 감소했다. ‘그동안 마련하려고 고민하던 물품을 구입했다’라는 응답 역시 47%에서 42%로 감소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돼 피로감이 높아지고 선별 지급이 시행되면서, 재난지원금의 효용성과 사용 효과가 전반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면서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전히 우세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코로나19 상황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는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재난지원금 지급이 이번 5차를 마지막으로 끝날지, 아니면 향후 몇 번 더 지급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여기에 더해 한 번 지급할 때마다 소요되는 예산 규모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높다. 보편 지급에서 차등 지급으로 여론이 이동한 기저에는, 불확실한 미래 상황과 국가의 빚이 늘어난다는 부담감이 깔려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해야 하는가? 지급해야 한다면, 누구에게, 얼마나 지급하는 것이 적절한가? 재난지원금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모두 지혜를 모아 풀어나가야 하는, 쉽지 않은 고차방정식이다.

이동한 한국리서치 정기조사 ‘여론 속의 여론’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