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수산업자' 김모(43)씨의 전방위 로비 수사가 정치권으로 확대되고 있다. 경찰은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해 김씨의 고급 수산물 '선물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여야 정치인들의 청탁금지법 위반 사실이 확인되면 엄정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김씨가 사기범죄를 통해 빼돌린 자금 용처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어, 수사가 어디로 튈지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김씨가 정치권 로비 의혹과 관련해 입을 연다면 경찰 수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전망이다.
2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주호영 의원 외에도 김씨의 '선물 리스트'에는 유력 정치권 인사들이 다수 올라있다. 리스트에 이름이 없더라도 김씨와 알고 지냈다고 밝힌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김씨와 친분이 있다고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기꾼과 어울렸다는 것만으로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씨의 고향이 경북 포항이다 보니, 그는 야권 인사들과 교류의 폭이 깊었다. 김무성 전 의원은 자신의 특별보좌관이기도 했던 송모씨로부터 김씨를 소개받은 뒤, 여러 인사들에게 김씨를 소개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의원의 친형이 사기 피해자이기도 하다.
포항지역 국회의원들도 김씨를 알고 지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언론인 소개로 김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밝혔으며, 김병욱 의원도 나이가 비슷한 김씨와 친분이 있었다고 김씨 측근들은 전하고 있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도 김씨를 만난 사실을 인정했다.
김씨는 여권 인사들에게도 선물을 보냈다. 박지원 국정원장의 경우 알고 지내던 정치인 소개로 김씨를 처음 만났으며, 수산물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지난해 김씨에게 수산품을 제공받고 답례품까지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 측은 "잘 모르는 사람인 김씨가 독도새우를 보내와서 일단 받고 '로열젤리'를 답례로 보냈다"고 밝혔다. 김씨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여권 성향의 한 전직 의원도 김씨와 친분을 유지했다고 한다.
경찰은 수사 대상을 정치권으로 넓힐지 고민하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검찰에 송치되기 전날 한 차례 입을 열었던 김씨가 이후엔 굳게 입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의 성패는 김씨가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받아 가로챈 100억여 원의 행방을 찾는 데 달렸다. 김씨는 사기 피해자들로부터 입금받은 돈을 곧바로 인출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용처 파악이 쉽지 않지만, 경찰은 다양한 수사기법을 동원해 종착지를 확인해가고 있다.
경찰이 김씨와 주변 인사들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오면서 김씨가 경찰 수사에 협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혐의를 자신이 안고 가기엔 일이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수사 경험이 풍부한 전직 경찰 고위간부는 "김씨가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가짜 수산업자 사기 사건이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