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해협을 누빈 '브르타뉴의 암사자'

입력
2021.08.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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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잔 드 클리송


해적 선장으로 이름난 여성은 기원전 아드리아해의 '테우타 여왕'에서부터 16~17세기 대항해시대까지, 문헌 등에 자취를 남긴 이들만 십수 명에 이른다. 여성의 승선은 부정하다는 뱃사람들의 금기에 적어도 해적은 휘둘리지 않은 셈이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실권한 왕족이거나 귀족, 또는 전설적 해적선장의 후계자였다는 점에서, 근대 이전 젠더 차별의식보다 완고했던 신분·계급 질서에 주목해야 할지 모른다.

프랑스가 왕위계승 문제를 두고 잉글랜드와 벌인 백년전쟁(1337~1453) 초기, 영국해협을 누비며 프랑스 진영을 공포에 떨게 한 '브르타뉴의 암사자' 잔 드 클리송(Jeanne de Clisson·1300~1359)도 영주의 아내였다.

노르망디와 경계를 면한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반도의 귀족 잔은 12세 때의 첫 결혼 이후 모두 네 차례, 영주급 귀족들과 결혼했다. 불운한 두 번의 결혼 뒤에 맞이한 세 번째 남편 올리비에 드 클리송 4세와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아이 다섯을 낳으며 13년간 누리던 결혼생활은 1341년 브르타뉴공국 왕위계승전쟁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프랑스 편에 섰던 남편은 전쟁에서 패하며 잉글랜드의 포로가 됐다가 전후 포로 교환을 통해 송환됐다. 문제는 잉글랜드 측이 요구한 그의 헐한 몸값이었다. 그는 반역자라는 의심을 사서 프랑스 국왕에 의해 1343년 공개 참형당했고, 그 사건 이후 잔은 복수심에 불타는 '암사자'로 변신했다.

그는 토지와 재산 일체를 팔아 세 척의 함선을 구입, 잉글랜드 왕실의 사략선장 면허를 받아 오직 프랑스 선박만 공격하는 해적이 됐다. 검은 선체에 핏빛 붉은 돛을 단 선단을 그는 '나의 복수( My Revenge)'라 불렀고, 나포한 선박의 선원 전원을 죽이고 단 한 명만 살려 프랑스 왕가에 그의 복수극을 전하게 했다.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13년 결혼생활만큼인, 1356년까지 만 13년간 해적질을 했고, 이후 재혼해 잉글랜드에서 귀족의 삶을 누렸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