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라는 이유로 선풍기도 안 틀어…폭염 사각지대 물류센터

입력
2021.07.26 17:00

"출근해서 지하실로 내려가면 열기가 훅 들어옵니다. 바깥의 뜨거운 열기와 습기에다, 택배 차량이 뿜어내는 매연까지 그대로 실내에 들어오지요. 물건을 옮기느라 안에선 먼지도 계속 날리고요. 하루종일 그런데, 선풍기나 환풍기를 안 틀어줘요. 주변에서 '시끄럽다' 민원이 들어오기 때문이라네요."

26일 한국노총이 접수했다는 서울 구로구 한 택배 물류회사의 고발 내용이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름철 물류센터가 '폭염 대책 사각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물류센터라 열기·습기·먼지·매연이 한데 뒤섞여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땡볕이 내리쬐는 실외 작업장보다 더 덥고 답답하다"고 토로하기 일쑤다. 하지만 어쨌든 천장이 있으니 실내 작업장으로 분류된다.

이에 민주노총 공공운수 사회서비스노조와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는 이날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혹서기 물류센터 내 근로자의 건강보호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을 맞아 물량은 폭증했는데, 제대로 된 폭염 대책은 없어서다. 민주노총 사회서비스노조는 "심한 피로감과 어지러움, 두통, 빠른 심장박동, 구역, 구토 등 온열질환 증세를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쿠팡물류센터가 지급하는 건 생수와 포도당 몇 알이 전부"라고 비판했다.

사정이 더 열악한 곳도 많다.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는 일부 롯데택배 물류센터의 경우 마실 물도 제대로 없다고 주장했다. 산업안전보건기준 규칙에 따르면 땀이 많이 나는 작업장에는 소금과 물을 갖춰 둬야 한다. 최승환 한국노총 택배산업본부 사무국장은 "소금이나 음료수는 고사하고 손을 씻을 수도 없어 인근 개천에서 물을 끌어다 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선풍기가 있어도 전기 아낀다고 안 트는 곳도 많았다.

이 때문에 노조는 아예 무더위에 취약한 실내작업에 대한 규칙을 별도로 만들 것을 요구했다. 택배회사 물류센터의 경우, 실내 작업인 데다 컨베이어 벨트를 쓰는 작업장 환경상 끼임 사고 등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개인 냉방 용품을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 사회서비스노조는 "실내 작업장이지만 비닐하우스, 물류센터, 조리실처럼 열기나 습기가 많고 작업 강도가 강한 곳은 별도의 휴식시간을 의무적으로 보장해주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롯데택배는 "한국노총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롯데택배 관계자는 "문제가 된 환풍 시설은 현재 작동 중이고 휴게실도 마련돼 있다. 작업장에 정수기 배치는 물론 최근엔 택배기사 개개인에게 쿨토시와 생수, 간식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8월까지 폭염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만큼 25일엔 '폭염 대비 노동자 긴급 보호 대책'도 내놨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택배 물류센터를 비롯, 고온의 실내 환경에서 일하는 현장들은 모두 지도, 점검 대상에 포함된다"며 "점검 작업을 통해 열사병 예방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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