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氣' 외국선수들이 살리네...한국말로 지시받고, 검은띠에 한글새겨

입력
2021.07.25 15:00
뉴질랜드 태권도 선수, 韓감독이 한국말로 지시
고개 끄덕이며 이해해...알고 보니 국내 대학 재학
여자 49kg급 결승전에선 두 선수 검은띠 눈길
'기차 하드, 꿈 큰' 등 오역 문구도 흐뭇한 화제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기대를 모았던 이대훈(29) 선수가 태권도 58kg급 16강전에서 충격의 탈락을 하면서 우리 선수들의 부진한 성적에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외 선수들이 태권도 종주국의 자존심을 살려주는 흐뭇한 장면들이 연출돼 눈길을 끌고 있다.

25일 일본 지바 마쿠하리 메세 A홀에서 열린 남자 68kg급 16강 경기에선 카메라에 흥미로운 장면이 포착됐다. 뉴질랜드 태권도 국가대표인 토마스 스튜어트 번스(22) 선수가 한국인 감독에게 한국말로 지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번스 선수는 "어차피 한 번이야! 한 번"이라고 외치며 큰 기술로 점수를 획득해야 한다는 한국인 감독의 지시에 "네"라고 답하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는 통역을 담당하는 사람도 없었다. 태권도 경기에선 선수와 감독, 의료진 등 최대 3명까지 동반 입장할 수 있다.

결국 번스 선수가 한국말을 이해하고 알아들었다는 의미다. 사실 이날은 번스 선수에게 생애 첫 올림픽 출전에, 첫 번째 경기였다. 하지만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상대 선수인 세계 랭킹 2위 영국의 브랜들리 신든 선수의 화려한 발차기 기술로 기선 제압을 당했다. 1라운드에서 27대 1로 크게 지고 있었고, 한국인 감독이 적극적으로 더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럼에도 번스 선수는 50점대를 획득한 신든 선수에게 큰 점수차로 지고 말았다. 매트를 내려온 번스 선수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남은 듯 보였지만 웃음을 띠며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승패를 떠나 경기를 즐긴 듯 보였다.

번스 선수는 알고 보니 충남 천안의 나사렛대 태권도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그는 2019년 뉴질랜드 국가대표로 선발돼 도쿄올림픽으로 직행했다. 이번 경기에서 번스 선수를 지도한 감독은 이 학교의 태권도 감독인 한승용씨다.

번스 선수와 한국의 인연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뉴질랜드에서 개최된 태권도대회에서 나사렛대 태권도 선수들의 훈련과 경기 모습에 반한 번스 선수는, 이듬해 이 학교 태권도학과에 입학했다.

나사렛대는 이틀 전 이러한 사실을 언론에 알려 홍보하기도 했다. 당시 번스 선수는 "처음 출전하는 올림픽이라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며,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첫 올림픽에 출전하는 소감을 전했다.


'기차 하드, 꿈 큰'은 무슨 뜻?...검은띠에 새긴 글 화제

전날 여자 태권도 경기에서도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살려준 장면이 눈길을 끌었다. 여자 49kg급 결승전은 훈훈한 장면들이 연출됐다. 이날 경기를 치른 스페인과 태국 선수들은 한글이 새겨진 검은띠를 두르고 경기에 임했다.

스페인 태권도 국가대표 아드리아나 세레소 이글레시아스(17) 선수는 이날 파란의 주인공이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파니팍 옹파타나키트(24) 태국 선수를 상대로 10대 11 역전패를 당해 아쉽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 선수의 활약이 아쉽게 느껴진 건 16강전과 8강전에서 세계 최고 선수들을 연이어 격파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는 16강전에서 세계 랭킹 2위인 세르비아의 티야나 보그다보비치 선수를 만나 승리했고, 8강전에선 2008 베이징올림픽, 2012 런던올림픽에서 이 체급 2회 연속 금메달리스트인 중국의 우징위(34) 선수를 33대 2로 격파했다.


이 과정에서 이 선수가 매 경기마다 두른 특별한 검은띠가 눈길을 끌었다. 검은띠에는 '기차 하드, 꿈 큰'이라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역된 것으로 보인다.

네티즌들은 '열심히 훈련하라, 크게 꿈꾸라' '열심히 훈련해서 큰 꿈을 이루자' 등의 해석을 내놓았다. 이들은 'Train Hard, Dream Big'이라는 문구가 번역의 실수로 'Train'을 기차로 해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또한 고국에 이번 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긴 태국 선수는 우승하자마자 대표팀 감독인 한국인 최영석 감독과 얼싸안았다. 최 감독은 옹파타나키트 선수를 주니어 시절부터 11년간 지도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옹파타나키트 선수도 '제17회 아시안게임 국가대표팀 파니팟 옹'이라고 한글로 새긴 검은띠를 경기 내내 착용했다.

강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