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주120시간' 논란? 현장은 코웃음…"공짜노동 현실 아느냐"

입력
2021.07.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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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외 근로 양산하는 '포괄임금제'
정부는 3년 넘게 개선 지침 '준비 중'
"법원 판단과도 엇박자…규제 시급"


최근 범야권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주 120시간 노동' 언급에 정치권이 들썩였다. 윤 전 총장은 "왜곡 해석"이라며 부랴부랴 해명했고, 여권 대선 예비후보들은 장시간 노동의 폐해와 '주 52시간제' 도입 성과를 내세우는 말들을 쏟아내며 공방을 이어갔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선 코웃음을 친다. 마치 주 120시간 노동이 어마어마한 공포인 것처럼 표현하는 정치인들은 정작 '현재진행형'인 현실의 가혹함을 알고는 있냐는 비판이 나온다. 여전히 현실에선 '무한야근'과 '공짜노동'이 판치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수년째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포괄임금제 악용'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루 12시간 일해도 월급은 그대로"


"'크런치 모드(신작 출시 전 집중근무 기간)' 땐 야근을 강제로 시킵니다. 철야근무를 서면 20시간 연속으로도 일해요. 너무 힘든데, 회사에선 계약서에 월 연장근로 50시간, 월 야근근로 20시간이 수당으로 포함돼 있어서 아무 문제가 없대요."
게임회사 직원 A씨

근로기준법에선 근로시간과 기본급을 정하고 추가 근무는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포괄임금제가 허용된다. 포괄임금제는 실제 근로시간과 상관없이 기본급에 연장이나 야간, 휴일근무 수당을 포함시키거나 정액의 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업종이나 조직이 아니어도 포괄임금제가 무분별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25일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A씨처럼 포괄임금제로 인한 피해 사례가 끊임없이 접수되고 있다.

연 매출이 100억 원이 넘는 정보기술(IT) 기업 직원 B씨는 "근로계약서엔 없는 디자인이나 제품 개발까지 떠안아 새벽까지 근무하지만, 포괄임금제를 이유로 야근수당을 못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C씨는 지난 1년 동안 기본 밤 9시, 늦으면 11~12시에 퇴근해 주 근로시간이 60시간을 넘는 경우가 태반이었지만 월급은 항상 240만 원이었다. 포괄임금 계약서상 연장근무 대가가 '연장수당 50만 원'으로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3년 넘게 잠자는 포괄임금제 규제책

노동계에선 추가 수당 지급을 피하려 회사가 일부러 근로시간을 기록하지 않거나 출퇴근 시간을 조작하라는 요구도 많다고 주장한다. 정부도 포괄임금제 개선 방침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발표 예고 시점이었던 2017년 10월을 한참 넘겨 4년 가까이 미뤄지고 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고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는 중이다. 정부가 지침을 내리면 자칫 포괄임금제가 더 확산될 수 있다는 부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고용부 입장이지만, 재계 반발에 눈치만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고용부의 강력한 규제를 촉구하면서 포괄임금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제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지를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용자에게 근무시간 기록 의무, 근로시간 분쟁에 대한 입증 책임 등을 부과하는 조치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특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포괄임금 약정 자체가 무효라는 것이 지난 10년간 법원의 일관된 판단인데도 고용부는 당사자 간 계약이라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며 "근로시간제도와 시간외수당제도 입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포괄임금제에 이제는 사망 선고를 내려야 할 때"라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