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주호영 국민의힘 의원이 '가짜 수산업자' 김모(43)씨로부터 수산물 등을 제공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주 의원이 입건될 경우, 현직 국회의원 중에선 처음으로 가짜 수산업자 금품수수 사건에 연루돼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주 의원 이외에도 김씨를 알고 지내던 전·현직 정치인들이 적지 않아, 경찰 수사가 정치권으로 확대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2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최근 주 의원이 김씨로부터 200만 원 상당의 수산물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제공받은 단서를 잡았다. 김씨는 주 의원 측에 대게와 한우세트를 한 차례씩 보냈으며, 주 의원과 친분이 있는 A 스님에게도 주 의원 부탁을 받아 120만 원 상당의 수산물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공직자 등은 1회 100만 원을 초과하거나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처벌하도록 규정돼 있다. 주 의원이 김씨로부터 받은 수산물 등의 총액은 300만 원을 초과하진 않지만, 김씨가 A 스님에게 제공한 수산물 가액은 1회 기준인 100만 원을 넘는다.
경찰은 이달 초 A 스님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해 '주 의원이 선물을 보내서 받았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 의원과 친분이 있는 A 스님은 지난 동안거(冬安居ㆍ겨울철 3개월간 외출을 금하고 한데 모여 수행하는 일) 기간 경북 경주 사찰의 선원(禪院ㆍ스님들이 모여 공부하고 참선하는 장소)에 머물렀다. A 스님은 올해 2월 당시 같은 선원 소속이었던 승려 4명과 사찰 인근 식당에서 가진 식사 모임에서 '가짜 수산업자' 김씨로부터 직접 대게를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A 스님 일행의 모임 장소로 찾아가 대게를 전달했으며, 이 자리에 주 의원은 동석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5선 의원인 주 의원은 국회 불자모임인 정각회 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명예회장으로 스님들과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A 스님과 같은 선원에 몸 담았던 한 스님은 한국일보 기자를 만나 "주 의원이 절에 와서 A 스님 앞으로 대중공양(신도가 스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일)을 한 적이 있다"며 "A 스님도 주 의원과 친분이 있다면서 같이 대게를 먹은 사진을 보여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사찰 주변에선 주호영 의원이 또 다른 스님 및 김씨로 추정되는 인물과 한자리에서 식사하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사찰 인근에서 만난 한 식당 주인은 "주 의원과 스님이 1, 2년 전 식당에 몇 차례 왔는데 한번은 같이 온 사람이 번쩍거리는 고급차에 대게를 박스로 가져온 적이 있다"며 "그 사람이 대게 사업을 하는데 오늘 많이 잡아서 갖고 왔다고 했다"고 전했다. 해당 식당은 본래 대게를 취급하지 않으나, 당시 일행이 쪄서 갖고 온 대게를 식탁에 함께 내줬다고 한다. 경찰이 파악한 올해 2월 식사 모임 이외에 김씨 측의 수산물 제공이 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경찰은 주 의원이 '가짜 수산업자' 김씨로부터 수산물 등을 제공받은 정황이 뚜렷해짐에 따라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금주 중 주 의원에 대한 입건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 의원은 언론인 출신 정치인 송모씨 소개로 김씨를 알게 됐으며,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배모 총경을 김씨에게 소개해준 것으로 전해졌다. 배 총경은 최근 한국일보와 만나 "올해 초 포항남부경찰서장에 부임했는데, 고등학교 선배(대구 능인고)인 주 의원이 '포항에서 수산업을 크게 하는 사업가가 있는데 서로 알고 지내면 좋을 것'이라고 말해서 김씨를 만나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주호영 의원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주 의원은 문자메시지로 "나는 (김씨로부터) 대게를 제공받거나 본 사실조차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