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 실제 공간이 아닌 인터넷에 만든 가상 세계를 의미하는 메타버스는 흔히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게임이나 커뮤니티로 생각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영향일 수도 있다. 2018년에 나온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눈만 뜨면 가상현실(VR) 기기를 이용해 ‘오아시스’라는 메타버스에 접속해 그 안에서 살아간다.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스필버그 감독이 영화 속에서 보여준 영상들은 마치 미래를 예견하듯 요즘 메타버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과 놀랍도록 닮았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영화처럼 가상공간에 모여 전쟁하듯 게임을 즐기고 노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메타버스가 각광받는 이유는 생산부터 소비까지 현실 속 경제활동을 가상공간으로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 있다.
특히 기업들이 주목하는 것은 메타버스를 이용한 각종 비즈니스다. 메타버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확산된 기업들의 원격 근무나 비대면 생산활동을 코로나19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가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메타버스에 모여 회의하고, 필요하면 다른 기업들과 각종 상담부터 공동 협업까지 진행할 수 있다. 이는 고스란히 물리적 공간과 오가는 시간을 절약해 비용 절감 및 생산성 증대로 이어진다.
그래서 요즘 뜨거운 뉴스는 누가 메타버스에서 가장 효율적인 협업 생산도구(협업 툴)를 확보할 것인가이다.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에 금광이 터지면서 금을 캐려고 몰려든 사람들에게 작업복으로 청바지를 팔아 돈을 번 사람들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그랜드뷰리서치는 협업 툴 시장이 2019년 13조 원에서 2028년 약 32조 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위해 글로벌 기업들은 협업 툴 업체들을 적극 인수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기업용 솔루션업체 세일즈포스는 지난 21일 기업용 메신저로 유명한 슬랙을 32조 원에 인수했다. 슬랙은 일반 메신저와 달리 업무에 필요한 각종 디지털 파일을 메신저에 띄워 놓고 공동 작업을 하며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협업 툴이다. 세일즈포스는 슬랙 인수를 통해 고객사들이 가상공간에서 각종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메타버스를 구축할 계획이다.
영상회의 시스템으로 유명한 줌도 최근 온라인 콜센터 소프트웨어 업체 파이브9을 약 17조 원에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며, 슬랙은 일정관리 툴을 개발한 우벤을 인수했다. 줌은 마치 스마트폰에 앱을 깔 듯 여러 기업이 만든 각종 협업 툴을 붙일 수 있는 ‘줌 앱스’ 제휴를 밀고 있다. 원격 칠판인 화이트보드 협업 툴을 개발한 한국계 신생기업(스타트업) 알로가 최근 20여 개의 줌 앱스 업체 중 하나로 참여했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협업 툴 확보에 적극적인 이유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아무리 뛰어나도 생산활동을 받쳐주는 도구가 없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오피스365’나 ‘아래한글’, 각종 웹브라우저처럼 ‘윈도’ 운용체제 위에서 돌아가는 응용 소프트웨어 개발 경쟁과 마찬가지다.
물론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지원하는 기본적인 협업 툴도 있지만 기업들마다 다른 요구를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협업 툴들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여러 IT 기업들과 스타트업들이 메타버스에서 활용 가능한 협업 툴을 개발하고 있다.
그만큼 메타버스를 하나의 놀이터로만 볼 것이 아니라 디지털 전환 시대에 떠오르는 미래의 생산현장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여기 맞춰 정부에서도 도구 개발에 필요한 정책적 지원이나 대책 등을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