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의 지하철 홍수 대책 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중국 허난성 정저우 지역에 "1,00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할 정도였다"는 기록적 폭우가 내리면서 승객 12명이 숨지는 결과를 낳은 '지하철 침수 사고'의 여파다.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기후위기가 '극단적 날씨의 피해에서 안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경각심을 일깨운 상황에서, 정저우보다 훨씬 노후화한 지하철이 다니는 전 세계 도시들도 상당수인 탓이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기후위기로 촉발된 '지하철 홍수 공포'가 '대중교통 이용 감소→차량 운행 증가→대기오염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으려면 하루빨리 지하철 시스템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하철 내 홍수 대책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가 시급하다는 의미다.
이 같은 의견이 나오는 데에는 1년 치 비가 사흘 만에 쏟아진 정저우 폭우가 단지 중국에 국한된 특수 상황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지난주 독일과 벨기에에서도 대홍수로 최소 205명이 숨졌고, 이달 초 미국 역시 열대성 폭풍 '엘사' 영향으로 물난리를 겪었다. 아직 10년도 안 된 최신 설비인 정저우 지하철이 감당하지 못한 이번 폭우가 만약 '지하철 운행 100년'의 역사를 지닌 영국 런던이나 미국 뉴욕에 내리면 훨씬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다.
뉴욕 지하철의 경우, 2012년 허리케인 '샌디'로 피해를 입은 후 한 차례 보수 공사를 했지만 올해도 폭우로 물에 잠겼다. 당시 지하철 환기구를 3,500개 설치하고 계단과 엘리베이터 등을 재정비하는 데 26억 달러(약 3조 원)를 투입했다. 그럼에도 이달 8일 엘사로 인한 집중 호우에 일부 지하철역 내부엔 성인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다.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재해 대비 시스템이 잘 갖춰진 일본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이시가키 다이스케 간사이대 연구원은 "도시를 가로지는 강이 범람할 정도로 폭우가 오면 현재 시스템으로 충분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간사이대 연구진의 시뮬레이션 결과, 하루 강우량이 280㎜이면 지하철 입구로 물이 들이차면서 15분 만에 지하철 플랫폼도 2.4m 아래로 잠긴다. 오사카 지하철은 폭우가 내리면 침수에 취약한 출입구가 1분 안에 봉쇄되고 승객들이 다른 출구로 대피할 수 있도록 했다. 도쿄 시부야역엔 빗물 4,000톤을 빼내 침수를 막을 거대한 저수조까지 건설했는데도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기후위기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도 지하철 홍수 대비 시스템 재정비는 필요하다. 홍수 사고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지하철 대신 자동차를 택하는 일을 막아야 해서다. 대중교통 이용 감소로 탄소 배출량이 급증하면 이는 기후위기 가속화로 이어진다. 미 비영리단체 에노교통센터의 로버트 푸엔테스 센터장은 "홍수에 대비한 지하철 개선은 (비용이) 엄청난 사업"이라면서도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할 비용과 비교하면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홍수 피해 위험이 적고 건설 비용도 저렴한 지상 경전철과 버스, 자전거 도로에 대한 투자를 제안하기도 한다.
1951년 기상 관측 이후 사상 최고 강우량을 기록한 이번 정저우 홍수에 따른 사망자는 총 33명으로 집계됐다. 8명이 실종됐고 이재민은 약 300만 명에 이른다. 직접적 경제 손실은 12억2,000만 위안(약 2,168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현재 3,000명의 군 병력이 투입돼 피해 복구에 힘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