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현안, 특히 위안부와 징용공 문제는 역사와 국민 감정까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법 논리만으로 말끔하게 정리하기 어렵다. 옳고 그름만큼이나 이해관계도 짚어보는 정치·외교적 접근으로 양측이 수긍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가 나쁘면 양측이 다 손해를 본다. 2차대전 후 일본 외교의 목표는 전쟁 책임에서 벗어나 정상국가로 정체성을 찾는 데 있었다. 1972년 닉슨 방중, 1990년 냉전 종식 등 국제정치판이 요동칠 때마다 일본은 평화헌법의 틀에서 변화를 모색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역설적이지만, 일본에 기회를 준 것은 고립주의와 일방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행정부였다. 일본은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전략’으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선봉이라는 정체성을 모색했다. 쿼드(미·일·인·호 4국 협의체)를 주도하고,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대응하여 ‘양질의 인프라’ 개념을 만들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창이던 2019년 초, 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아베 총리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체결을 알리고, 중국의 ‘사이버 주권’에 맞서는 ‘자유롭고 믿을 수 있는 데이터 거버넌스’도 제의했다.
미국의 지도력과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회복을 주창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일본 관계를 중시하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꼬인 매듭을 풀어내지 못하면 일본 외교의 성과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과거를 직시하지 못하는 일본은 여전히 힘의 논리로만 국제정치를 본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은 일제 침탈의 가장 큰 피해자다. ‘자유무역’을 주창하는 일본이 그런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을 규제한 것은 뼈아픈 실책이었다.
한·일관계 악화를 두고 일본이 한국을 손절한다는 말도 있다. 근거가 있는지 의문이다. 일본은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포기할 수 없다. 19세기 말 일본이 한반도 침탈을 시작하여 식민지배까지 이른 것은 한반도의 전략적 위치 때문이 아니었던가.
한국은 한 세기 전의 역사를 잊을 수 없다. 그래도 앞날을 생각하면 일본과 좋은 관계로 가야 한다. 일본 열도에 막히면 해양 진출이 어렵다. 사이가 나쁜데, 일본이 통일을 지지해 줄 리도 없다.
그뿐만 아니다. 세계는 지금 강대국의 지정학적 대결을 넘어 새롭고 강력한 도전을 맞고 있다. 기후변화가 산업정책을 흔들고, 감염병이 전쟁보다 큰 피해를 준다. 신기술의 등장은 전략자원의 개념을 바꾼다. 산업구조, 기술 수준, 정치·경제 체제, 지정학 등 많은 면에서 한·일 양국은 갈등보다 협력을 통해 도전에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한·일관계의 정치적 여건은 또 바뀐다. 일본은 올가을에 총선을 치른다. 한국은 내년 3월 대선이 있다. 양국의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그것을 둘러싼 공방, 2018년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 한일정보보호협정 종료 등 악화일로를 걸어온 한·일 갈등은 반전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것으로 기대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올림픽 개막식 참석이 무산되어 아쉽다.
1년 늦추어진 도쿄올림픽이 결국 ‘무관중’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1964년 첫 번째 도쿄올림픽은, 아시아에서 처음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라간 사카모토 규(坂本九)의 노래 “위를 보고 걷자(일명 ‘스키야키 송’)”와 함께, 패전을 딛고 일어서는 일본을 세계에 알렸다.
이번 올림픽이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최악의 조건에서 열리지만, 그래도 고난을 넘어 미래를 여는 희망의 제전이 되기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