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유명인의 자살을 다룰 때 보도 방향을 바꾸자 일반인 자살률이 크게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자살을 묘사하는 언론 보도를 자제하고 신중히 전하면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는 ‘파파게노 효과(Papageno effect)’가 과학적으로 규명된 셈이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우리나라의 최근 자살률이 줄어든 배경을 분석해 언론의 보도 변화가 미친 영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1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20년 자살 사망자는 1만3,018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1만3,799명보다 781명(5.7%) 감소했다.
자살률이 최고치에 이르렀던 2011년(1만5,906명)과 2019년을 비교하면 2,107명(13.2%) 줄었다.
전홍진 교수팀은 2012년 자살 예방법 시행과 더불어 2013년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이 언론 현장에 적용되면서 자살률 감소에 크게 기여했다고 봤다.
연구팀에 따르면 자살 예방법과 자살 보도 권고 기준 시행 이전인 2005~2011년 유명인의 자살 관련 보도가 나간 후 한 달 동안 일반인 자살률은 평균 18% 늘었다.
유명인의 사망 직전 한 달 평균값과 비교한 결과로 5년 치 월간 평균 자살률과 코스피(KOSPI) 지수, 실업률, 소비자물가지수(CPI) 등을 모두 반영해도 자살 보도가 미친 영향이 뚜렷했다.
유명인의 자살 보도를 접하면서 힘든 상황에 있는 일반인이 이에 동조하거나 우울증, 자살 생각 등 부정적 요소가 악화하면서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가 나타난 탓이다.
변화는 2012년부터 감지됐다. 2012년 자살 예방법과 2013년 자살 보도 권고 기준이 차례로 시행되면서 유명인 자살 보도 후 한 달간 자살률 증가 폭이 감소했다.
2013~2017년에는 통계적으로도 유의미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적ㆍ제도적 정비와 함께 자살을 대하는 언론의 보도 방향이 바뀐 덕분이다.
전홍진 교수는 “언론 노력으로 지난 10년간 더 많은 생명을 지킬 수 있었지만 2018년 이후 다시 영향력이 늘고 있다”며 “유튜브, 소셜 미디어 등 다양한 경로로 유명인의 자살 관련 소식이 전해지는 만큼 이에 대해서도 자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전 교수는 자살률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근거 중심 지역사회 맞춤형 자살 예방 대책”과 “지역사회 복지 인센티브를 통한 사회 연결성 증진 방안 등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호주·뉴질랜드 정신의학 저널(Australian & New Zealand Journal of Psychiatry)’ 최근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