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이제는 세계인의 식탁마저 위협하고 있다. 지구촌을 휩쓴 이상기온이 찌는 듯한 무더위나 꺼지지 않는 산불, 해수면 상승과 같은 환경 변화에 그치지 않고 농축산물 피해로까지 이어지는 탓이다. 농산물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면서 식량 대란을 불러올 거란 전망마저 나온다.
21일(현지시간)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기후의 역습이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미 아프리카 동쪽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선 환경 문제로 인한 식량난이 현실이 됐다. 국민 10명 중 7명이 농업에 종사하고 생물 다양성도 높아 한때 ‘풍요의 땅’으로까지 불렸던 이 나라는 현재 114만 명이 긴급히 식량 구호를 받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 40만 명은 기아 상태다.
정치적 불안정 상태에 빠진 것도, 해충 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지구온난화로 4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이다. 대부분 가정이 직접 농사 지은 수확물로 끼니를 해결해 왔지만, 흉작이 찾아오면서 심각한 식량난에 처하게 된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통상 기근은 전쟁이나 자연재해에서 비롯됐으나, 마다가스카르에선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오로지 기후변화 때문에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저소득 국가만의 일이 아니다. 식량 수출 1위인 미국을 비롯해 ‘세계 곡물창고’로 불리는 국가들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몸살을 앓는 북미에선 농작물 열사(熱死)가 이어지고 있다. 호수도 말라 버려 농부들은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작물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최근 미국 농무부는 봄철 밀 수확량이 33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극심한 가뭄이 원인이다. 세계 아몬드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미 캘리포니아주(州)에서는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센트럴밸리에서 아몬드를 재배하는 크리스틴 잼펄은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물이 없어 농장의 나무 3분의 1이 말랐다”고 토로했다. 물 부족 사태가 캘리포니아 농업 산업을 급속히 위축시키고 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비롯한 캐나다 서부 지역의 경우, 나무에 달린 체리가 고온으로 불에 익은 듯 손상됐다. 그나마 성한 열매도 속이 제대로 차지 않아 주스용으로 전락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인근 밀밭 역시 누렇게 시들어 수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남미 브라질은 갑작스러운 한파가 몰아치면서 기온이 이례적으로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세계 최대의 커피·설탕·오렌지 수출국이자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옥수수 수출국인 점을 감안하면 생산량 감소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농산물 가격정보 기관 아그리센서스는 “역사적인 농작물 손실을 기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피해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곡식과 풀의 생장 부진은 축산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가뭄으로 동물들이 먹을 물과 먹이가 부족해지자 목장주들은 가축을 내다 팔거나 도축에 나서고 있다. 이상기후에 따른 생태계 피해가 도미노처럼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해양 생물도 예외는 없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1일 폭염으로 북미 서부 태평양 연안의 홍합·조개·불가사리 등 해양 생물 10억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수온 상승은 어획량 감소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만 줄면 가격이 뛰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가뜩이나 감염병 확산에 따른 물류난으로 세계 식량 가격이 꾸준히 오르는 상황에서, 생산량 감소가 이를 부채질하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식량 인플레이션 유령을 키우고 있다(블룸버그)”는 표현마저 나왔다. 직접적인 피해자는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사람들이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 미국지부의 애비 맥스먼 대표는 “기온이 치솟으면서 취약계층이 그 대가를 치르게 됐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기후 위기가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란 점이다. 레노어 뉴먼 캐나다 프레이저밸리대 식품농업연구소장은 “기후 변화가 일상이 되면 식량 생산은 완전히 끝난다”며 “매년 혼란이 발생하는 현행 방식으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만큼 식량 생산 방법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