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체력 격인 잠재성장률을 기존 2.5%에서 2.3%로 낮췄다. 빠른 고령화 등 인구 요인이 주는 부정적인 효과가 향후 경제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는 게 피치의 판단이다.
다만 한국이 코로나19 경제 충격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고, 재정 여력도 비교적 양호하다는 것을 근거로 국가 신용등급은 기존 ‘AA-‘를 유지하기로 했다.
2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피치는 이날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로 향후 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6월 30일~7월 8일 사이 진행된 한국 정부와 피치 사이의 연례협의 결과다.
한국의 신용등급은 피치의 신용등급 기준상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2020년 3월 이후 영국(등급), 일본, 미국(이상 전망) 등 주요 선진국의 신용등급과 전망이 하향된 가운데, 한국만큼은 등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신용도 유지를 뒷받침한 것은 건전한 재정관리 이력이다. 피치는 올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전망치를 47.8%에서 47.1%로 낮췄고, 당초 2024년 58%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던 것을 54% 수준으로 조정했다.
피치는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에도 재정전망은 당초 대비 개선될 전망”이라며 “추경 재원을 추가세수로 충당하고, 추가 적자국채 발행을 하지 않으며, 나아가 국채를 일부 상환함에 따라 중단기 재정 지표가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올해 성장률이 4.5%에 달하고 내년에도 3.0%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유지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강화됐지만, 백신 보급 가속화, 2차 추경 등에 힘입어 하반기 소비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피치는 다만 가속화되는 고령화를 한국 경제의 약점으로 짚었다. 피치는 “빠른 고령화는 중기 성장률을 제약하고, 고령화에 따른 지출 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국가채무 증가는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잠재성장률 전망치를 2.5%에서 2.3%로 낮췄다.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는 남북관계와 함께 신용평가사들이 꾸준히 지적하는 한국 경제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 5월 신용등급을 유지하면서도 “고령화로 인한 장기적인 경제적, 재정적 비용, 북한과의 군사 대립 위협이 신용등급에 도전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4월 신용등급 발표 당시 “한국이 대외 경쟁력과 견조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생산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신평사들이 우려하는 한국의 구조적 문제 개선에 나서는 한편, 정책 대응과 경제 회복 동향을 적극 알리는 등 소통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한국판 뉴딜 2.0 등 혁신 전략이 우리 경제, 사회 구조 대전환을 통한 잠재성장률 제고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