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소수자 인권 보호와 권익 강화에 앞장서 온 아르헨티나가 남녀가 아닌 제3의 성별을 신분증에 표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번에도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처음이다.
22일(현지시간) 외신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정부는 전날 관보를 통해 주민등록증과 여권 등 신분증에 기존 남성(M)과 여성(F) 외에 ‘X’ 성별 옵션을 추가했다고 공포했다. 남녀 어느 성별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성 정체성을 정부가 공인한 것이다. 앞으로 이분법적 성별 구분에서 벗어난 성 정체성을 지닌 논바이너리(non-binary)나 자기 성별을 규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은 X 성별을 택할 수 있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21일 부에노스아이레스 카사로다가 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남녀 외에 다른 성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도 존중받아 마땅하다”며 “사랑하고 행복해지는 방법은 수천 가지”라고 말했다. 엘리자베스 고메스 알코르타 여성ㆍ성평등ㆍ다양성부(部) 장관은 성 중립 표기 결정은 더 평등하고 포용적인 사회로 가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아르헨티나 성소수자연맹은 “정부 결정은 역사적 진보”라며 “진정한 권리 평등을 향하는 중요한 단계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제3의 성을 표기할 수 있도록 한 나라가 없지는 않다. 이미 뉴질랜드, 독일, 호주, 캐나다 등이 허용하고 있다. 최근 여권 성별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바꾼 미국 정부도 논바이너리 옵션 도입을 현재 추진 중이다.
그러나 중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가 첨병이다. 2010년 역시 중남미 국가 중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고, 2012년에는 성전환자 등이 자신의 정체성에 맞게 성별을 바꿀 수 있게 허락했다. 국민의 절대다수(77%)가 신자인 대표적 가톨릭 국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 높게 평가할 만한 진보성이다. 지난해에는 임신 초기 낙태의 법적 근거를 만들기도 했다.
인정뿐 아니다. 차별을 없애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7일 공포된 ‘성전환자의 정규직 취업 장려법’이 대표적이다. 공무원 채용 인력의 일정 인원을 성전환자 몫으로 할당하게 한 것이다. 이 법안으로 아르헨티나의 3대 권력 기관은 채용 인력의 1%를 성소수자에 배당하게 됐다. 민간 기업에는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성소수자 고용에 참여하면 1년 감세 혜택 등을 받는다.
아들 에스타니슬라오 페르난데스(27)가 유명한 드래그퀸(여장 남자)인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공로가 작지 않다. 대통령 취임식 당시 정장에 성소수자의 상징인 무지개색 손수건을 꽂고 참석한 에스타니슬라오는 성소수자 축제에 참여하는 등 성소수자 옹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과거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아들의 활동을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과거 성소수자 인권 신장에 선구적인 리더가 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는 페르난데스 대통령 덕에 남미에 아르헨티나발(發) 변화의 바람이 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