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으로도 잘 알려진 '플랜더스의 개'의 무대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열린 제7회 올림픽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각별했다. 1920년 대회 직전 사상 최악의 역병인 스페인독감이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다.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사망자만 3,000만 명에 가까웠던 1차 세계대전이 끝난 게 불과 1년여 전이다. 준비 기간이 짧아 시설도 부족하고 체계도 없었지만 상처만 가득한 세상에 희망을 주려는 상징성이 적지 않았다. 오륜의 올림픽기도, 선수단 선서도, 평화의 상징으로 비둘기를 날리는 이벤트도 이 대회부터 시작됐다.
□ 23일 개막하는 도쿄올림픽은 여러 점에서 안트베르펜 대회를 닮았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인 데다 일본으로서는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참사에서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트베르펜 때와 달리 역병이 여전히 한창이다 보니 대회가 결코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 국민 절반 이상이 개최에 반대한다. 오죽했으면 일왕조차 개회 선언에서 "축하"를 뺀다는 말까지 나올까.
□ 안타깝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올림픽은 이번만이 아닐 것 같다. 불과 7개월 뒤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정치적인 이유로 이미 외교적 보이콧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영국 하원은 최근 중국 신장위구르의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정부 대표의 올림픽 참가 거부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앞서 유럽의회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에 같은 요구를 했다. 미국 하원 의장도 선수단 이외의 외교 사절단 참가 '보이콧'을 주장했다.
□ 올림픽 집단 보이콧 사태가 흔하진 않다.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는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서독 일본 등 50개국 가까이 선수단을 보내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다음 대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였는데 보복으로 소련과 동유럽 국가들이 불참했다. 전염병에도 불구하고 돈 때문에 어거지로 치르는 올림픽, 정치 갈등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올림픽을 연이어 보기도 쉽지 않다. 올림픽이 인류에 작은 희망으로 다가오던 시절이 저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