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위기·이민자 위기란 없다… 인류의 이주는 본능일 뿐"

입력
2021.07.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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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發) 입국을 일찌감치 막았다면 이 사달을 피할 수 있었을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함께 지난해 바이러스 확산 초기 중국인 입국을 금지해 감염원을 차단했어야 한다는, 정부를 향한 비판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과학 저술가 소니아 샤에게만큼은 바이러스 발원지 입출국 통제 주장이 통하지 않을 듯하다. 그에게 인류의 이주란 오랜 역사를 통해 이미 체화된 습성이기 때문이다. 이동성이 커질 대로 커진 현대사회에서 칼로 무 자르듯 바이러스 전파 경로를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는 "이주는 마치 피가 혈관을 돌아다니듯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다"고 했다.

소니아 샤의 '인류, 이주, 생존'은 인간에게 살아 있는 다른 생명체처럼 '이주 본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책은 인류의 이주가 반이민·반난민주의자들이 말하듯 위협이 되기보다 오히려 진보를 이끈다고 말한다.

인도계 이민 2세 미국인인 저자는 인류의 이주 경향이 질병과 갈등을 확산시킨다는 정치인과 언론의 태도를 꼬집고, 인간의 이주는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과학 저술가답게 단순히 정서적 반감을 표출하는 대신 생물지리학·보전생물학·유전학·인류학·과학사 지식을 반론의 근거로 담담하게 제시한다.

책은 인류의 이주와 이민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저자는 이주해온 타 인종에 대한 혐오와 배제의 기원을 찾아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생물 분류법으로 유명한 스웨덴 생물학자 칼 린네는 인류를 백색 유럽인, 적색 아메리카인, 황색 아시아인, 검은색 아프리카인으로 나눠 우생학의 주춧돌을 놨다.

이주민을 제한하는 흐름은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1924년 시행된 이민에 관한 법률 존슨리드법에 따라 과학자들은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이 법의 할당제 조항에 따르면 매년 이주자 할당량의 80% 이상이 서유럽과 북유럽 출신자들에게 배당됐다. 백인이 아닌 이주자 대다수와 동유럽·남유럽 출신자들은 입국이 금지됐다. 특히 아시아계와 아프리카계 인종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다.

저자는 이주에 대한 이 같은 부정적 인식과 관련해 인간이 한 장소에서 붙박이처럼 살았다는 신화를 반박하며, 인류는 과거에도 끊임없이 이주했음을 증명하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함께 소환한다.

UC버클리의 앨런 윌슨은 서로 다른 인종과 대륙 출신인 여성 147명의 태반을 분석해 이들의 20만 년 전 조상이 동일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여기에 루카 카발리 스포르자는 DNA 분석을 근거로 현생 인류의 아프리카 단일 지역 기원설을 입증해 보였다.

이에 저자는 인류에게 붙여야 할 적합한 이름은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인간)'가 아닌 '호모 미그라티오(이주하는 인간)'인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 같은 학자들의 이주 역사 증명 노력 중에도 비서구권 이민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여전하다. 세계 각지에서 국경 장벽 건설 등 이주자를 겨냥한 장애물이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21세기 들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4년에는 홍수나 폭풍, 지진 등의 이유로 매년 2,600만 명이 이동했고, 2015년에는 불안정한 사회의 폭력과 박해 등으로 1,500만 명 이상이 자신의 나라를 탈출해야 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책은 결국 거대한 이주의 물결을 위험 요인으로 보는 대신 기회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인간은 왜 이주하는가'가 아닌 '이주를 어떤 식으로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유입국 사회가 빗장을 걸지 않는다면 이주자들은 낯선 문화적 관습과 요리법, 생활 및 사고방식을 가져와 배타적 인구집단에 참신함을 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국제결혼 이주 여성과 이주 노동자의 규모가 증가하면서 한국도 더 이상 외국인 혐오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곱씹어 볼 만한 대목이 많은 책이다. 다만 인류의 이동에 대해 나비·늑대 등 자연 생태계의 이주 현상에서 유사성을 찾고, 같은 맥락에서 인류가 다른 종처럼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주할 것이라는 주장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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