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 경기 김포시 양곡리 개 도살장 문이 열렸다. 동물단체 동물구조119가 2년 전부터 지켜봤지만 그동안 불법행위 증거가 없어 애를 태우던 곳이다. 동물구조119는 경기 지역 개농장과 도살장, 경매장을 방문해 불법행위를 적발, 당국에 고발하고 행정처분을 이끌어 내기 위한 국토대장정을 시작한 지 이틀째인 이날 해당 도살장을 급습했다.
전기봉, 토치 발견 등 불법 개도살 정확 포착
임영기 동물구조119 대표와 활동가들은 당초 김포시에 있는 한 대형 개농장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임 대표는 개농장으로 가는 도중 초복 전날이라 해당 도살장에서 개 도살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도살장으로 급히 방향을 틀었다. 도착해 보니 항상 굳게 닫혀 있던 도살장 앞에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내부에서는 움직임이 확인됐다. 활동가들은 도살장 앞에 모여 개 도살에 대해 항의했고, 안쪽에서 도살 증거를 없애고 있다고 판단, 경찰에 신고하고 김포시청에 해당 사실을 알렸다.
11시30분, 출동한 경찰 입회하에 소방관이 도살장 쇠사슬을 풀었다. 도살장 안에는 개 도살 시 사용했던 전기봉과 털 뽑는 기계, 토치가 발견됐다. 바닥에는 개털이 널려 있었고 냉장고에 사체가 들어있는 등 불법 개 도살이 이뤄진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해 법원은 전기봉으로 개를 도살하는 행위를 동물학대로 처벌하면서 수사기관이 개 도살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단속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도살장 옆에는 12마리의 진돗개와 누렁이가 뜬장(배설물이 쌓이지 않게 바닥을 띄워 설치한 견사)에서 사육되고 있었다. 김포경찰서는 증거 보전을 위해 사체와 개 12마리에 대해 이동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정작 개들을 긴급 격리조치할 김포시청 공무원은 현장에 나오지 않았고, 경찰은 주말이 지난 이후 김포시에 해당 사실을 통보하기로 했다.
도살장 뒤편 쇠줄에 묶인 채 길러지던 믹스견
임영기 대표는 도살장을 둘러보던 중 믿기 힘든 광경을 목격했다. 도살장 뒤편 쇠줄에 묶인 작은 덩치의 개가 꼬리를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도살업자가 ‘애완견’이라며 키우고 있는 개였다. 개를 죽이는 걸 직접 볼 수 있는 위치는 아니었지만 도살 시 소리가 들리고 냄새를 맡기엔 충분했다. 개는 낯선 사람의 품에도 반항하지 않고 쉽게 안겼다.
임 대표는 "도살업자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안락사 직전 입양해 온 개라고 소개했다"라며 "펑펑 울며 데려가 달라, 안락사시키지 말고 입양 보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식당에서 주문을 받아 10년 이상 개를 전기도살해온 사람이 할 얘기는 아니었다"라며 "애완견이라고 키우는 개와 도살하는 개가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동물구조119는 구조한 개의 건강상태를 살피기 위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7~8세로 추정되는 개는 실외에서 키우면서 예방약을 먹이지 않은 탓에 심장사상충에 감염되어 있었고, 중성화 수술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은 '모과'라는 이름을 얻고 서울 영등포구 문래로 동물구조119 입양센터에서 중성화 수술을 마치고 치료를 받으며 새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지자체 안이한 대처로 철창 속 12마리 구조 못해
한편 모과와 달리 뜬장 속 12마리는 결국 구조되지 못했다. 동물구조119는 12일 김포시청 관계자와 해당 도살장을 방문한 결과 개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도살업자는 경찰에 금전관계가 있는 다른 개농장 업자가 데려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대표는 "김포시청이 긴급 격리조치에 나서지 않는 등 즉각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라며 "김포시청에 사라진 12마리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포시청 관계자는 "유기동물 업무 담당 인력 부족으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라며 "위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