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영국에서 연구년을 보낼 때 성탄절에 기차를 타러 갔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이날 전국적으로 기차 운행이 중단된다는 사실을 문이 닫힌 역에 가서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명절이면 귀성객을 위해 기차가 증편되고, 직원들은 더 바쁜 하루를 보내야 하는 풍경에 익숙한 필자에게 소수 근로자의 권익을 위해 다수 소비자의 불편을 제도적으로 용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소비자로서의 국민과 근로자로서의 국민이 가진 이해는 다르며, 둘 사이의 균형점은 그 사회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거의 매일 산업재해 사고와 이로 인한 안타까운 사망 소식을 들으며 오늘날 우리나라가 근로자로서의 국민을 충분히 존중하고 보호하는 사회인지를 곱씹게 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882명이 일터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었고, 부상이나 질병을 겪은 사람은 훨씬 더 많다. 오늘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숱한 근로자들이 위험하고 힘든 작업환경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국가로서 부끄러운 형태의 산업재해 사고가 빈발하면서 사회적인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이는 일련의 입법과 제도적 변화로 이어졌다.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씨 사망을 계기로 2018년 말에는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고 산업현장의 안전 규제를 대폭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제정되었고, 금년 초에는 중대한 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주·경영책임자 처벌을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되었으며, 이번 달 13일에는 중대재해 예방의 컨트롤타워인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하였다.
다수의 산업재해가 사업체의 안전불감증과 관리 소홀로 인해 발생했던 만큼,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무거운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는 대응책을 내놓은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터를 안전하게 만드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명시적으로 따져보고, 소비자가 부담해야 할 부분을 포함한 사회적 분담에 대해 정직하게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는 비용이 든다. 법령이나 규제만으로 기업이 제대로 된 안전설비를 갖추고, 작업 규칙을 준수하며, 노동강도를 줄이도록 하기는 어렵다. 여건이 좋은 일부 대기업의 경우에는 가능하겠지만, 산업재해 발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다수는 사업주가 감옥에 갈 위험이 있더라도 작업장 안전에 충분히 투자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실효성에 대한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사업체들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서 제외된 것은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작업장 안전을 개선할 비용은 누가 부담할 것인가? 규제와 처벌의 대상이 된 기업이 짊어져야 할 부담은 비교적 명확하다. 덜 선명한 부분은 소비자의 몫인데, 기업이 전가할 수 있는 비용은 소비자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방식으로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기업을 정부가 지원할 경우, 이 역시 세금의 형태로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 결국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소비자 편익과 근로자 안전 사이의 균형점이 근로자 쪽으로 더 움직여야만 한다. 극단적인 수준의 안전 추구는 기업과 소비자의 부담을 크게 늘린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 그리로 우리 사회를 움직이는 일은 정치와 행정의 몫이다.
안전한 일터는 그 값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 사회에서만 얻어지는 것이다. 노동환경 개선을 희망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다. 나는 물류 노동자의 과로사를 줄이기 위해 더 비싼 택배비를 내고 느린 배송을 감내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