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형사처벌' 3명 중 2명은 언론·교육계 인사

입력
2021.08.0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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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 후 확정 판결 53건 전수 분석>
홍보 기사 부탁 받고… 정교사 약속하고
후원금 수수 등 운동부 지도자 특히 많아
고위공직자 적발 사례 적지만 파장은 커
'가짜 수산업자' 사건 무더기 입건 이례적


# 전북의 지역지 기자 A씨는 2017년 11월 건설업체 이사 B씨로부터 아파트 분양 홍보 기사를 써달라는 청탁과 함께 2,000만 원을 받아 이 중 1,240만 원을 동료기자 13명에게 50만~150만 원씩 배분했다. 아파트 공사 현장은 이전 시행사가 공사를 하다가 3번이나 중단한 곳이었다. B씨는 시민들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기자들에게 현금을 나눠 주고 홍보 기사를 부탁한 것이다. 얼마 뒤 기자들은 일제히 분양 홍보 기사를 작성해 내보냈다. 법원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언론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한 지역 주민의 신뢰가 훼손돼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부산의 한 사립학교 교장은 2016년 11월 기간제 수학 교사에게 정교사 전환을 약속하며, 그 대가로 현금 1억1,500만 원과 600만 원 상당의 명품 손가방을 받았다. 그러나 정규직 채용은 이뤄지지 않았고 교장은 징역 1년 2개월을, 기간제 교사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적용된 죄명은 청탁금지법 위반이었다.

검찰과 경찰 간부, 언론사 기자 등이 무더기로 연루된 '가짜 수산업자' 김모(43)씨 사건을 계기로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유명무실한 법으로 전락할 거라던 우려를 받았던 청탁금지법이 유명 인사들까지 적용받을 수 있는 현실 속 법으로 각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보다 언론인, 교사가 더 많이 처벌

1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2016년 9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사람은 1,025명이다. 이 중 651명은 과태료, 236명은 징계부가금 처분을 받았다.

청탁금지법은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 행위에 적용된다. 부정 청탁은 과태료, 상대적으로 죄질이 안 좋은 금품 수수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직무 관련 여부와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 또는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처벌된다. 다만 직무와 연관 있는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 또는 연간 300만 원 이하를 수수한 경우(식사 3만 원, 선물 5만 원, 경조사비 10만 원 초과)는 부정 청탁과 마찬가지로 과태료 처분이 내려진다. 금품 등을 받고 기관장에게 지체 없이 신고하지 않는 등 경미한 법 위반으로 징계 대상에 오른 공무원은 징계부가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과태료나 징계부가금 처분을 넘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법정까지 불려갔다면 상대적으로 심각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봐야 한다. 한국일보가 대법원 판결서 인터넷 열람 시스템을 통해 2016년 9월 이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정식 재판에 넘겨져 확정 판결을 받은 93명(사건 수는 53개)의 판결문을 전수 분석한 결과 언론인과 교육종사자가 가장 많이 형사처벌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청탁금지법에선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가 금지된 '공직자 등'의 정의를 '공무원법에 따른 공무원, 공직유관단체기관장과 임직원, 각급 학교장과 교직원 및 학교법인 임직원, 언론사 대표자와 임직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소된 93명 중 금품을 받은 '공직자 등'은 69명, 금품을 제공한 민간인은 24명으로 조사됐다.

'공직자 등' 69명 중에선 언론인이 24명으로 가장 많았고 교육종사자가 19명(초·중·고 교사·대학 교수 및 운동부 지도자 17명, 교직원 2명)으로 뒤를 이었다. 두 직업군이 기소된 전체 인원의 60%를 넘었다. 다음으로 지방공무원(13명), 공기업·공단 직원(5명), 경찰(4명), 검찰(2명), 중앙부처 공무원(2명)의 순이었다.


기소된 언론인 24명 중 23명은 지방 언론사 소속으로, 1인당 평균 1,868만 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역업체를 대상으로 비방성 기사를 작성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금품을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부정적 기사가 나가면 평판이 안 좋아지거나 관청에서 비리가 적발될 수도 있어, 업체들은 일부 언론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





'가짜 수산업자' 김씨가 언론인들에게 골프채나 렌터카를 제공하며 친분을 쌓은 것처럼 민간업자와 언론인이 유착한 경우도 있었다.

충남의 한 골재업체는 바닷모래 채취 자격 기간이 만료된 뒤 관청으로부터 연장 허가가 나오지 않을 것이 우려되자, 알고 지내던 기자에게 '허가가 연장되지 않으면 지역 경제가 타격을 입는다'는 취지로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하며 회사 법인카드를 건넸다. 이 기자는 법인카드로 1년 동안 175회에 걸쳐 529만 원 상당을 결제했다.

경북 지역 기자 2명은 평소 친분이 있던 사회복지법인 이사장이 지불한 비용으로 5박 6일 동남아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

교육종사자 19명 중에선 운동부 지도자가 12명이나 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 시행 직후 학부모들이 내는 학교 운동부 후원금을 학교 회계에 편입하도록 함으로써 학부모들이 별도로 지도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건 허용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렸지만 판결문을 통해 본 체육계의 병폐는 여전했다.

이들은 급여와 기숙사비 명목으로 학부모들에게 50만 원에서 200만 원을 정기적으로 받았다. 교육종사자의 1인당 평균 수수금액은 3,081만 원으로 모든 직군 중에서 가장 많았다. 이는 운동부 지도자들이 장기간 꾸준히 금품을 수수한 영향이 컸다. 교육종사자 가운데는 사립학교 소속이 9명으로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고위공직자 위반 숫자는 적어도 파장은 커

2016년 청탁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원안에 없던 언론인과 사립학교 종사자들이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되면서 적절성 논란이 일었다. 공무원도 아닌데 공무원이 적용받는 법률로 형사처벌을 받는 건 과도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당시 '공무원 잡으려다 언론인 잡는 법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형사처벌 받은 직업군을 살펴보면 언론인과 사립학교 종사자가 가장 많았음이 확인된 것이다.

해석은 엇갈린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계 내부에선 언론자유 침해라는 이유로 청탁금지법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것을 강력히 반대했는데, 단일 직군으론 가장 빈번하게 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왔다"며 "언론이 윤리적 부분에 대해 경각심을 갖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최승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인의 법 위반이 많은 이유는 취재 영역이 넓고 언론사 규모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큰 영향도 있다"며 "언론이 다른 분야에 비해 부패했다고 해석하는 건 무리"라고 밝혔다.

청탁금지법으로 처벌받은 공무원 중 고위직보다 하위직이 많은 것 또한 상대해야 할 민원인이 많기 때문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중앙부처와 지방공무원, 경찰과 검찰을 통틀어 기소된 21명 중 5급 이하 하위직은 15명에 달했다. 이들의 금품수수액은 지방공무원의 경우 1인당 373만 원, 검찰공무원 209만 원, 경찰공무원 344만 원으로 대부분 500만 원 미만이었다.

고위 공직자의 경우 자기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쏟는데다 내밀한 관리가 이뤄지는 탓에 청탁금지법 위반 적발 사례는 드문 편이다. 하지만 일단 적발이 되면 파장이 커서 대형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박영수 전 특별검사와, 현직 검사, 경찰서장, 중앙언론사 간부가 다수 연루된 '가짜 수산업자' 사건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가장 큰 파장을 몰고온 사건으로 평가된다.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93명 중 절반 정도인 46명은 벌금형을 받았다. 집행유예는 22명, 실형은 13명이었다. 나머지 7명은 선고유예, 5명은 무죄였다.

뇌물 수수나 배임 등 다른 혐의 없이 청탁금지법 위반만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1명이었다. 방송사에서 카메라 관련 업무를 하는 언론종사자로 지인이 부탁한 민원을 회사 내 기자에게 전달해 보도하게 하는 대가 등으로 6,500만 원의 금품을 받아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윤태석 기자
윤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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