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국가인 니제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다. 하지만 돈만 없는 게 아니다. 지난해부터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이 나라에는 없다. 아무도 마스크를 안 썼지만, 환자가 없으니 백신도 필요 없다. 대확산을 경고했던 세계보건기구(WHO)만 머쓱해졌다. 니제르는 어떻게 ‘코로나19 무풍지대’가 됐을까.
1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코로나가 종식된 듯 살고 있는 니제르의 분위기를 소개하고 배경을 분석했다. 신문에 따르면 니제르에서는 거리는 물론 실내에서도 마스크 쓴 사람을 찾아볼 수 없고, 여럿이 모이는 행사도 그냥 열린다. 수도 니아메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비토리오 지오니는 “우리는 (코로나 사태 발생 전인) 2019년처럼 살고 있다”고 WSJ에 말했다.
실제 최근 한 달간 니제르의 하루 감염자는 두 자릿수가 된 적이 없다. 확진자가 아예 없는 날도 7일이나 됐다. 감염 사례가 워낙 적다 보니 백신 접종 수요도 거의 없다. 5월 말 인접국 코트디부아르에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만 회분을 빌려줬을 정도다. 중증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지난해 병상 70개짜리 병동을 만들었지만 올 4월 이후 찾는 이가 없다.
이는 WHO의 예측과 딴판이다. 지난해 이 기구는 빈곤율이 높고 보건 환경이 열악한 서아프리카에서 수백만 명이 코로나로 숨질 것이라 내다봤고 니제르는 그중에서도 가장 걱정되는 나라로 꼽혔었다.
이는 니제르의 독특한 자연과 인문 조건 때문이다. 바이러스가 살기에도 퍼지기에도 최악이다. 우선 고온 건조한 기후를 갖고 있다. 월평균 기온이 30도를 넘고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이다. 신문이 미국 보건부의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뉴욕과 니아메의 자외선 노출량, 온도, 습도를 비교한 결과 니아메의 기후 여건에서 코로나의 전염성이 2배 빨리 반감됐다.
니제르가 ‘젊은 나라’라는 점도 핵심 변수였다. 유엔인구기금(UNFPA)이 4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니제르의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6.6명으로 세계 1위다. 14세 미만 인구도 전체의 49.5%로 가장 많았다. 코로나가 공략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마을이 드문드문 떨어진 데다 국민 대부분이 목축업으로 먹고살아 야외 활동이 많다는 사실도 확산을 막은 요인이다.
정부의 선제적인 방역도 한몫했다. 지난해 3월 확진자가 처음 나오자마자 국경을 통제하고 실내 종교 활동을 금지해 일찌감치 바이러스 전파를 차단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니제르에 행운만은 아니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고작 565달러(약 64만9,000원)일 정도로 가난한 나라가 방역 탓에 더 가난해졌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경제 활동 제한으로 니제르의 극빈층이 40만 명이나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했다.